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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휴식을 주던 유성호텔, 이제 영원한 휴식 속으로

2024-03-28 11:29:51

유성호텔 전경 [유성호텔 제공]
유성호텔 전경 [유성호텔 제공]
[비욘드포스트 김선영 기자] 대전시에 위치한 유성은 과거 삼국시대 때 백제의 땅이었고 고구려, 신라와 가까운 탓에 전투가 잦았다. 백제 말, 신라와의 전투 끝에 포로로 잡혀 고초를 겪은 7대 독자가 몇 년 후 간신히 생환했으나 전쟁통에 생긴 상처가 낫지 않아 고생하고 있었다.

아들의 병시중을 들던 어머니는 어느날 우연히 백설이 덮인 들판 한 가운데 날개를 다친 학 한 마리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웅덩이의 물에 날개를 적시며 상처를 치료하는 모습을 보게 됐고 이에 아들을 데려와 그 물에 몸을 담그게 했더니 상처가 씻은듯 나았다.

기록에는 없지만 유성온천의 유래로 전해 내려오는 백학의 전설이다.

역사에는 고려사에 "온천이 있다"고 적혀 있고, 세종실록에 "태종 이방원이 왕자이던 1393년 유성온천에서 목욕을 한 뒤 병사들의 군사 훈련을 지켜봤다"는 내용이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1394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의 도읍지를 물색하기 위해 계룡산 신도 안으로 가던 중 유성온천에서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들어 일본인들에 의해 본격적인 휴양지로 개발되기 시작한 유성온천은 광복 이후 꾸준히 목욕탕과 호텔이 생겨나며 1990년 후반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시설 노후화와 관광 트렌드 변화로 명성을 조금씩 잃어가기 시작하다 온천을 겸비한 워터파크가 전국에 들어서며 결국 대중의 외면을 받았다.

유성온천 부근에 온천의 원탕을 보유한 호텔은 계룡스파텔과 경하온천호텔, 유성호텔 등 3곳으로 그 중 유성호텔은 1915년에 개관해 올해로 109년이나 된 유서 깊은 호텔이다.

그 당시 유성호텔에는 커다란 연못이 있었고, 그 위에는 연회를 열 수 있는 10실 가량의 수상 누각과 함께 화려한 조경으로 유성의 대표 명소가 됐다.

남탕과 여탕 각 500명 씩 1000명이 동시에 목욕을 즐길 수 있는 규모의 대욕장에 전성기에는 하루 3000명이 입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후 86아시안게임 대전 선수촌 본부호텔, 88서울올림픽 대전 선수촌 본부호텔, 2002월드컵 미디어 본부 호텔 등 국가 주요 행사 때마다 지역 본부 호텔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유성호텔 역시 관광 트렌드 변화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이용객이 줄며 경영난을 맞았다.

2020년 적자 전환 이후 1년만에 누적적자 37억 원에 이르자 2022년 호텔은 폐업을 결정했고 2024년 3월 31일 영업을 종료한다.

유성호텔은 폐업을 앞두고 '추억 마케팅'을 전개하기도 했다.

호텔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한 '공홈족'에게는 유성온천호텔의 로고가 그려진 목욕 바가지를 증정했고 객실 냉장고에는 목욕 후 즐길 수 있는 바나나맛 우유와 초코파이가 자리했다.

폐업 소식을 들은 고객들은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곳이다. 폐업 전에 한 번 더 가서 마지막 추억을 쌓았다", "100년 넘은 호텔을 언제 또 경험해 보겠나. 문 닫기 전에 방문했다"며 마지막 리뷰를 남기기도 했다.

해당 자리에는 재개발 후 주상복합 2동과 24층 규모의 관광호텔이 다시 들어설 것으로 알려졌다.

ahae@beyone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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