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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목사님과 ‘뒷것’

2024-07-31 08:29:52

[신형범의 千글자]...목사님과 ‘뒷것’
지난 주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과 같은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게 됐습니다. 일흔을 넘겼지만 나이에 비해 생각도, 말도 젊게 사시는 목사님은 갑자기 ‘학전을 아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음악과 예술에, 그리고 고결한 사상에 김민기에게 많은 빚을 졌다,고 했습니다. 주일날, 그것도 예배가 끝나자마자 평생을 목회자로 산 목사님의 입에서 나온 얘기가 ‘예수’나 ‘교회’가 아니어서 뜻밖이었습니다. 김민기와 그의 삶에 대한 얘기는 점심을 먹고도 한참 동안 이어졌습니다.

1970~80년대 청년문화, 저항음악의 상징이었지만 김민기는 앞장서서 투쟁을 주도하는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학생운동단체나 노동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고 시대가 그려낸 세상을 들여다보고 관찰하면서 그저 피 끓이면서 자기 음악을, 자기 세계를 만들었을 뿐입니다.

앞에 나서거나 주목받는 걸 워낙 꺼리는 성격이라 생전에 인터뷰를 한 것도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를 인터뷰한 인터뷰어들은 하나같이 마주한 상대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고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말하는 스타일이라고 김민기를 기억합니다.

학전을 통해 세상을 빛내는 스타들 – 설경구 황정민 김광석 박학기 장현성 이정은 김윤석 조승우 등 – 을 키워냈지만 평생 ‘앞것’들이 빛나도록 돕는 ‘뒷것’을 자처했습니다. ‘배울 학(學)’ ‘밭 전(田)’, 학전(學田)의 원래 뜻은 교육비를 충당하기 위해 따로 설치한 논밭이라는 뜻이지만 뜻글자를 그대로 풀면 ‘배움터’ 또는 ‘못자리’입니다. 인재를 키워내는 못자리, 사람 농사꾼 정도로 해석됩니다. 김민기가 돈 안되는 어린이뮤지컬에 각별한 열정을 보였던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입니다.
스스로 충분히 빛날 수 있었고 마음만 먹었다면 세상의 중심에서 더 많은 권력과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음에도 굳이 무대 뒷편과 낮은 자리를 고집했습니다.

경영난에 처한 학전을 돕고 투자하겠다는 사람과 단체가 여럿 나섰지만 그는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순수하게 관객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라야 가치가 있다는 믿음에서였습니다. 돈 벌자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위치와 실력도 있었지만 결벽에 가까운 자기원칙을 지켰습니다. 그것 때문에 자기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했지만 같은 이유 때문에 존경받았습니다.

그의 성정을 보여주는 한 가지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십대 초반 보안사에 끌려가 한참을 맞다 보니까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패는 놈들 모습이 느린 화면으로 보이더랍니다. 아프고 고통스러운 감각이 무뎌지면서 갑자기 그놈들한테 미안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 때문에 이들이 죄를 짓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나중에 운동권 후배들한테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미워하지 마라. 미워하게 되면 걔네들 닮아간다. 나중에 보니까 박정희 무지하게 미워하던 놈들이 박정희 비슷하게 되더라.” 2015년에 한 신문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입니다. 20세기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말한 ‘파시즘이 남긴 최고로 나쁜 유산은 파시즘과 싸운 자들의 내면에 파시즘을 남기고 사라진다는 사실이다’와 같은 맥락입니다.

그의 노랫말에는 증오보다 약한 것들에 대한 연민이 짙게 배어 있습니다. 사회적 상상력과 서사가 전부가 아니라 자연과 자유의 들녘에 서서 시대와 세상과 사람을 노래한 음유시인이었습니다. 문득 돌아보니 우리 세대는 목사님 말씀처럼 김민기의 삶에 신세만 지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세상과 시대를 두리번거리며 단정짓지 못한 결론은 해찰이 아니라 살핌이었습니다. 학전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아르코)가 ‘꿈밭극장’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한다고 합니다. 부디 새 공간이 김민기를 단지 스토리텔링으로 소비하는 공간이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그가 이루지 못한 꿈을 후배들이 이어 받아 펼치는 공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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