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MP, "글로벌 원유 지형 크게 변할 것"...저렴한 베네수엘라 원유 공급되면 중동 러시아 피해 불가피
[비욘드포스트 이성구 전문위원]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 장악할 경우 중국 러시아는 물론 중동 산유국들도 피해가 예상된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7일 미국이 베네수엘라 원유를 장악할 경우 중동산유국을 포함해 중국 러시아 등도 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베네수엘라 국영석유회사, SCMP, 연합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7일 트럼프 행정부의 베네수엘라 원유 장악 행보를 본격화하는 가운데 그로 인해 글로벌 원유 이권 지형이 크게 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우선 베네수엘라를 미국이 사실상 통제하게 된다면 중동 산유국들의 입지·영향력 축소가 예상되고, 미국과 석유 거래가 많은 캐나다·유럽연합(EU)도 피해가 예상되며 러시아와 중국도 큰 손실을 봐야 할 처지라고 보도했다.
지난 3일 새벽(이하 현지시간) 전격적인 베네수엘라 공격 이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를 체포·압송한 뒤 5일 뉴욕 법정에 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는 별도로 베네수엘라 석유산업 재편을 예고하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집권 당시 단행된 석유산업 국유화는 불법 조치였으며 미국 석유메이저 축출은 부당하기 때문에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3일 마두로 대통령 체포 작전을 설명하는 기자회견에서 미국 석유 메이저들이 "수십억 달러(수 조원)를 들여 심각하게 파괴된 석유 인프라를 복구하고 돈을 벌기 시작할 것"이라고 언급한 데 이어 6일에는 "석유 회사들과 만나겠다"고 밝히는 등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재편 의지를 본격화하고 있다.
언제 회동할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올해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를 내는 기색이 역력하다.
가급적 이른 시일 내에 친미 또는 우호 정권을 수립한 후 미국의 석유 메이저 및 정유, 건설기업들 주도로 베네수엘라 '부흥'을 이루고, 이를 통해 세계 석유 시장을 재편하겠다는 의지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재편으로 "당연하게도 미국이 최대 수혜국이 될 것"이라고 SCMP는 전망했다.
우선 미국 내에서 멕시코만과 서부 해안을 포함한 정유시설의 70%가 초중질유 정유에 특화돼 있다는 점에서다.
미국 석유화학업계 단체(AFPM)에 따르면 미국으로 수입되는 원유의 90%가 중질유다. 미 정유시설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경질유인 셰일오일 붐 이전에 설립됐다.
초경질유는 경질유보다 밀도가 높고 점성이 강하며 중질 탄화수소와 불순물 비중이 커 휘발유 등으로 정제하기 전에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하지만, 이를 처리할 시설을 갖춘 미국 내 정유기업에는 매우 높은 수익을 가져다줄 수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청(EIA)은 베네수엘라의 석유 매장량은 사우디아라비아보다 더 큰 규모인 3030억배럴에 달하며 전 세계 총량의 17% 수준인 것으로 추정한다.
베네수엘라 변수로 엑손모빌, 셰브런, 코노코필립스 등 미국의 3대 석유 메이저들의 기대도 부풀고 있어 보인다.
SCMP에 따르면 베네수엘라 좌파 정권의 국유화 조치로 상당한 자산을 빼앗긴 코노코필리스는 오랜 기간 베네수엘라 정부와 법적 분쟁은 물론 국제 중재를 통해 120억달러 회수에 전력을 다해왔다.
엑손모빌 역시 국유화 및 자산 압류를 이유로 베네수엘라 정부와 16억5000만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여전히 베네수엘라 유전에서 석유 채굴을 하는 셰브런은, 내색은 하지 않고 있지만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 재건으로 막대한 이익을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과도 정부가 제재 대상이었던 고품질 원유 3000만∼5000만 배럴을 미국에 인도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AFP, 연합뉴스
이와는 달리 캐나다는 울상이다. 베네수엘라 변수로 가장 큰 손실을 보게 됐기 때문이다.
AFPM에 따르면 미국 원유 수입의 60%는 캐나다산 중질유였다. 캐나다 앨버타 오일샌드에서 생산돼 미 중서부와 멕시코만 연안의 정유시설로 보내져 왔다,
그러나 캐나다산 원유는 베네수엘라산 초경질유와 유사한 탓에 품질, 정제시설 호환성, 시장성 등에서 직접적인 경쟁이 불가피하다.
'저렴한' 베네수엘라산 초경질유가 미국에 본격적으로 유입되면 캐나다로선 대미 원유 수출 가격과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이 급락할 수밖에 없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도 난관에 봉착할 전망이다.
현재 미국 제재와 자국 내 석유 채굴 기반 와해로 전 세계의 1% 수준인 하루 100만 배럴 생산에 그치고 있는 베네수엘라가 '과거'의 주요 생산국으로 돌아간다면, 사우디아라비아의 입지가 많이 축소될뿐더러 수익 감소가 불가피해진다.
무엇보다 OPEC을 통해 원유 생산량 감축과 증산을 조율하면서 유가에 영향력을 행사해온 사우디아라비아의 주도권이 상실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4년 가까이 치르고 있는 러시아에도 큰 타격이 예상된다.
그동안 EU의 러시안 원유 수입 기피로 인도와 중국에 수출량을 늘려왔으나, 베네수엘라가 싼값으로 원유 수출을 늘리게 되면, 러시아의 세계 시장 점유율과 가격 결정력이 크게 약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전 장기화 속에서 원유 수입 감소는 러시아 재정 수입과 경제 안정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SCMP는 짚었다.
러시아산 대신 미국산 원유 수입을 늘려온 EU도, 미국이 베네수엘라산 원유 흐름을 통제하고 가격 및 물량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할 경우 수입선 다변화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특히 베네수엘라의 마두라 정권과 '대미 항전 코드'를 공유하면서 장기적인 특혜를 제공받으려 했던 중국도 피해가 불가피해 보인다.
중국 외교부 린젠 대변인. 사진=EPA 연합뉴스
국유기업 중국석유천연가스집단유한공사(CNPC)가 2008년 베네수엘라 국영 석유회사 PDVSA와 합작·설립한 페트로시노벤사를 통한 600억달러 채무 탕감용 원유 공급받기와 민간기업 콩코드리소스(CCRC)의 베네수엘라 유전 개발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중국의 베네수엘라산 원유 도입량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중국 경제에 큰 타격이 가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중국 해관총서(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베네수엘라산 원유 149만t을 수입했지만, 이는 중국 전체 원유 수입량의 0.27%에 불과하다.
그러나 중국은 채권을 포함해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차원에서 베네수엘라에 투자해온 에너지와 통신, 그리고 위성 지상국 등 항공우주 인프라 등의 자산에 대해 베네수엘라 변수가 끼칠 피해에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