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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미네르바의 부엉이

입력 : 2026-03-10 08:37

[신형범의 千글자]...미네르바의 부엉이
내가 전철에 탔을 땐 소동이 거의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한 노인이 서넛 정도의 젊은이들에게 뭔가 훈계하는 상황 같은데 노인이 다음 정거장에서 내리는 바람에 객차 안은 금방 조용해졌습니다. 빈 자리가 없어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내 뒤에 있던 또 다른 젊은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하는 얘기가 들렸습니다. “하여간 틀딱들이란…”

틀딱은 ‘틀니’와 ‘딱딱하다’를 합친 말로 나이가 많고 사고방식이 구시대적인 사람을 비꼬거나 비하하는 말입니다. ‘꼰대’와 어감이 비슷한데 꼰대보다 더 경멸적으로 쓰입니다. 재작년에 환갑이 지난 나도 어떤 사람들 눈에는 방금 내린 노인처럼 틀딱으로 보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주눅이 들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노인을 바라보는 양극단의 시선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노인에 대한 폄하입니다. 노인을 시대정신과 현실감을 잃어버린 분별력 없는 사람으로 보는 시각이지요. 이 경우엔 무조건 제쳐놓고 싶어 하거나 아예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다른 하나는 영혼이라고는 1(?)도 없는 습관적 존중입니다. 노인은 그저 삶의 경험이 풍부하고 지혜롭다고 관성적으로 말합니다. 두 관점 다 노인을 개별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고 범주화한다는 점에서 부정확합니다. 솔직히 불편합니다.

아이들마다 다르고 젊은이가 다 다르듯 노인들도 당연히 사람마다 다릅니다. 개별적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노인을 노인이라는 집단적 정체성이 전부인 존재로 바라봅니다. 노인이 아닌 어느 누구라도 그런 시선은 그 존재에 대한 폭력입니다. 누군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유기체가 아니라 그냥 ‘노인일반’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무례한 겁니다. 노인들 각자의 개별성을 완전히 무시한 시각이기 때문입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엉이는 로마신화에서 지혜의 여신 미네르바(그리스신화에선 아테나)를 상징합니다. 독일 철학자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이 저서 《법철학 강요》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저물어야 날개를 편다’고 해서 유명해졌습니다. 다양하게 해석되지만 부엉이는 황혼이 돼야 날듯이 철학은 시대가 저물고 난 뒤에야 그 시대를 온전히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는 것은 모르는 것과 관계가 있습니다. 무엇을 모르는지 확인하는 과정은 결국 깨닫고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틀렸다는 걸 안다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는 걸 아는 것이고 그만큼 정답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는 뜻입니다. 그런 점에서 노인들은 자신이 살면서 모르는 게 많다는 걸 깨달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깨달음은 뒷북인 경우가 많습니다. 중요한 건 똑같은 뒷북을 다시 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엇을 몰랐는지, 무엇 때문에 실패했는지를 잘 짚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노인은 진정으로 아는 것에 다가가기에 유리한 입장입니다. 깨달음은 늦게 오지만 가치가 있고 노인들 중에는 깨달은 노인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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