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과학의 정점인 인공지능 시대에 오히려 점, 사주, 궁합 같은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무속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현대인의 심리와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모순적 태도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선 현대인들은 무당의 ‘영험함’보다 데이터를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주명리학을 ‘조상의 빅데이터’ ‘운명에 관한 통계학’쯤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수천 년간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무속에 객관성과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는 것이지요. 즉 인간 주술사는 주관적 편견이 개입될 수 있지만 AI는 편향되지 않은 알고리즘으로 나의 운명을 ‘분석’해 준다는 믿음입니다.
다음은 일종의 포러효과입니다. 포러효과(Forer Effect)는 누구에게나 그럴듯한 모호하고 일반적인 특성을 ‘나만의 특별한 경우’로 받아들이는 심리현상입니다. AI는 개인화된 문장을 생성하는 데 탁월하기 때문에 포러효과는 극대화됩니다. 경제불황, 고용불안 등 미래가 불투명할수록 인간은 ‘정해진 답’을 갈구하는데 AI는 단 몇 초 만에 미래의 불확실성을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로 바꿔주는 심리상담사 역할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종의 놀이문화로 보는 겁니다. 과거 복잡한 절차를 거치고 복채를 내야 했던 무속이 이젠 스마트폰 앱이나 챗봇으로 ‘즐기는’ 가벼운 컨텐츠가 됐습니다. 사회적 또는 종교적 시선 때문에 무속인을 찾는 게 망설여지지만 AI와의 대화는 확실하게 비밀이 보장됩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AI에게 털어놓고 풀이를 받는 과정에서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좀 다른 관점이지만 신영복의 《강의 : 나의 동양고전 독법》에서 본 내용이 생각납니다. 〈주역(周易)〉을 설명하는 장에서 “나는 점치는 사람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점치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스스로를 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이런 사람을 의지가 약하다고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면 된다’는 부류의 의기방자한 사람에 비하면 훨씬 좋은 사람이지요… 나는 인간에게 두려운 것, 즉 경외의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함니다.”라고 썼습니다. 신영복은 ‘여담’이라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보여준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니체의 《선과 악을 넘어서》에 나오는 “약한 자가 돼라(Werden)”라는 말과 같은 맥락입니다. 독일어 ‘werden’은 ‘되다’ ‘생기다’ ‘만들어지다’ ‘태어나다’ ‘자라다’ 등의 뜻이 있습니다(학부 전공이 독일문학입니다. 믿어도 된다는 뜻입니다). 니체가 말한 ‘약한 자’는 순응하고 복종하는 인간이 아닙니다. ‘힘이 없음’을 인정하고 기존의 권력을 부정하며 새로운 가치체계를 창조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약한 자는 강한 자가 만든 규칙을 따르지 않는 자, 기존 질서를 해체하고 사유하는 위치성입니다. 그러니 ‘약자인 상태’가 아니라 ‘약자가 되자’는 주장입니다.
신영복의 ‘점치는 사람’이나 니체의 ‘약한 자’는 기득권에 순종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타자성, 결핍, 단점, 약점을 강자 중심적 사회를 전복하는 자원으로 삼는 사람을 말합니다. ‘약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기존의 강자처럼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모두 점을 보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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