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벤처기업부가 최근 발표한 ‘2026년 지역상권 육성사업’을 들여다보면 낯익은 장면이 반복된다. ‘유망골목상권’에서 시작해 ‘로컬테마상권’을 거쳐 ‘글로벌 상권’으로 나아가는 3단계 구조가 그렇다. 얼핏 보면 체계적이다.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골목을 발굴하고, 테마를 입히고, 나아가 전국적·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상권으로 키우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현장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발표 앞에서 기대보다 걱정이 먼저 앞선다. 과연 5억 원, 1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된다고 해서 죽어가는 골목이 저절로 살아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지원사업의 오랜 경험을 통해 하나의 교훈을 배워왔다. 상권은 예산으로만 살아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업에 선정되면 간판이 바뀌고, 바닥이 정비되고, 공용시설이 생기고, 축제와 이벤트가 열린다.
사업 기간에는 사람도 모이고 언론 보도도 나온다. 하지만 사업이 끝난 뒤 다시 찾아가 보면 익숙한 적막이 흐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때는 북적였지만 지속되지 못했고, 지원이 끝나자 다시 예전 상태로 돌아가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왔다. 문제는 예산이 적어서가 아니다.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상권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이 아니다. 상권은 점포, 상인, 주민, 방문객, 건물주, 운영조직, 지역문화, 이동 동선, 체류 환경이 얽혀 작동하는 하나의 생태계다. 이런 생태계는 외부에서 영양제를 꽂는다고 하루아침에 자라지 않는다.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버틸 수 있는 토양이 먼저 만들어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의 상권정책은 여전히 토양을 기르기보다 겉모습을 바꾸는 데 더 익숙하다. 그 결과 ‘단계’는 있는데 ‘실력’은 없는 상권이 양산된다.
현재의 3단계 구조는 마치 초등학교만 졸업하면 실력과 무관하게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 자격을 주는 것과 비슷하다. 올해 유망골목상권 사업에 선정되면, 실질적인 변화가 충분하지 않아도 다음 단계 사업에 도전할 자격을 얻게 된다.
그러나 상권의 경쟁력은 행정 단계표를 따라 자동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골목의 매력은 화려한 조명, 예쁜 사인물, 보여주기식 경관 개선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 골목을 지키는 점포 하나하나가 얼마나 분명한 개성과 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상인들이 얼마나 함께 움직일 수 있는지, 방문객이 왜 이곳에 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얼마나 명확한지가 훨씬 중요하다.
실제로 살아나는 상권은 몇 가지 공통점을 갖는다. 첫째, 그곳에 갈 이유가 있어야 한다. 다른 동네와 구별되는 콘텐츠, 지역만의 이야기, 소비 이상의 경험이 필요하다. 둘째, 머물 이유가 있어야 한다.
잠깐 사진만 찍고 떠나는 공간이 아니라 걷고, 쉬고, 둘러보고, 소비할 수 있는 체류 구조가 갖춰져야 한다. 셋째, 다시 올 이유가 있어야 한다. 점포의 품질, 친절, 인상, 관계, 프로그램이 재방문을 만들어내야 한다. 넷째, 함께 움직일 조직이 있어야 한다. 상인회나 운영조직이 느슨하거나 형식적이라면 어떤 지원도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상권은 시설이 아니라 콘텐츠와 관계, 점포 경쟁력과 조직력의 결합으로 살아난다.
그런데 많은 지자체는 여전히 중앙정부 공모 선정 자체를 목표로 삼는다. “지방비를 매칭하겠다”, “지역 특성을 살린 로컬 테마를 만들겠다”,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문구는 계획서에 넘친다.
그러나 정작 골목의 개별 점포가 어떤 상태인지, 상인들이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점포 간 협업 기반은 있는지, 지역 자원을 어떻게 상권 콘텐츠로 바꿀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계획서는 화려하지만 현장은 비어 있는 경우가 많다. 결국 예산을 따오는 데는 성공하지만 상권을 키우는 데는 실패하는 구조다. 이것은 지자체의 실적일 수는 있어도 골목의 실력이 되지는 못한다.
더 큰 문제는 성과를 보는 기준조차 왜곡되어 있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많은 상권사업은 행사 횟수, 방문객 수, 홍보 실적, 시설 조성 건수 같은 지표로 성과를 설명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보여주기 쉬운 숫자일 뿐이다.
진짜 성과는 따로 있다. 점포의 생존율이 높아졌는지, 공실률이 낮아졌는지, 방문이 실제 소비로 이어졌는지, 단골과 재방문 고객이 늘었는지, 사업 종료 뒤에도 상인조직이 자력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축제를 한 번 크게 여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그 축제가 골목의 일상 매출 구조를 바꾸고, 점포 경쟁력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모든 골목을 같은 방식으로 살릴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해야 한다. 주민이 주로 이용하는 생활형 상권과 외부 방문객이 찾는 관광형 상권은 접근 방식부터 달라야 한다. 생활형 상권은 주민 일상에 필요한 업종 경쟁력, 보행 편의, 생활밀착 서비스가 중요하다.
반면 관광형 상권은 체류 콘텐츠, 동선 설계, 지역 스토리, 브랜딩이 핵심이다. 청년창업 중심 골목은 실험적인 콘텐츠와 온라인 확장성이 중요하고, 전통 기반 상권은 기존 상인의 역량 고도화와 세대 전환 전략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획일적인 단계 기준으로 같은 사다리를 오르게 한다면 현장의 다양성은 사라지고 행정의 편의만 남게 된다.
그래서 이제는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나눌 필요가 있다. 먼저 지자체는 정부 공모 이전에 ‘기초 체력’을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상인을 모아 교육하고, 점포별 컨설팅을 지원하고, 상품과 메뉴, 진열, 서비스, 홍보 방식을 개선하며, 상인 간 협업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상인회가 이름만 있는 조직이 아니라 문제를 논의하고 공동사업을 운영할 수 있는 실제 조직으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지역의 역사·문화·생활 자원을 발굴해 그것이 상권 콘텐츠와 연결될 수 있도록 기획해야 한다. 골목이 살아난 뒤 임대료 상승으로 기존 상인이 밀려나는 일이 없도록 상생 구조와 지속가능성 장치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이것이 지자체의 숙제다.
중앙정부는 단순히 예산을 배분하는 창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성공하는 상권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육성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가 그 준비를 실제로 했는지 냉정하게 검증해야 한다.
상인 교육 실적, 점포 개선 성과, 조직 운영 수준, 지역자원 연계 전략, 종료 후 자립 운영 계획 등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과감히 선정하지 않아야 한다. 즉 준비된 상권에만 예산을 투입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그래야 지자체도 단순한 ‘돈 따오기 경쟁’이 아니라 ‘상권 키우기 경쟁’으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상권 활성화는 짧은 이벤트가 아니라 긴 호흡의 마라톤이다. 점포 하나하나가 개성을 갖고, 그 점포들이 관계를 맺으며, 그것이 하나의 테마와 경험으로 연결되고, 나아가 지역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 없이 진행되는 단계별 지원은 껍데기만 남기기 쉽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속이 비어 있다면 골목은 다시 조용해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늘 확인하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콘크리트는 늙지만, 사람은 성장한다는 점이다. 간판과 시설은 시간이 지나면 낡지만, 상인의 역량과 점포의 경쟁력, 지역의 운영조직은 키워놓으면 자산으로 남는다. 2026년 지역상권 육성사업이 과거의 예산 낭비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큰 예산이 아니라 더 엄격한 준비 기준이다.
정부는 지갑을 열기 전에 그 골목이 정말 스스로 숨 쉴 준비가 되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준비되지 않은 상권에 주는 돈은 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준비된 상권에 주는 지원은 지역경제를 살리는 씨앗이 될 수 있다. 이제는 상권 육성의 껍데기가 아니라 알맹이를 준비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