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로멘틱하지도 웃기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로코, 즉 로멘틱 코미디를 좋아합니다. 젊은 시절, 갈망한 것에 비해 보잘것없는 연애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남의 연애 이야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의 속성 중 하나는 소망을 충족시켜준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현실에서 겪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영화를 좋아하나 봅니다.
그런데 충무로도 할리우드도 점점 로코를 만들지 않는 추세입니다. 이러다 장르적으로 사라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일상에서 로멘스가 벌어질 여지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코는 낯선 남녀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지는 도시형 판타지입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이 나오면서 연애의 형식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일단 우연한 만남이 없습니다. 인스타그램 DM 같은 소셜미디어나 미국의 경우 틴더나 범블 등 데이팅앱으로 연애를 시작합니다.
옛날 로코 주인공들은 우연히 만나면서 편지로, 하다못해 이메일로 사랑을 만들고 키우고 싸우고 헤어지고 그리워했습니다. 지금이라면 이 모든 것들을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주고받는 장면만으로 채워야 할 것입니다. 우연한 만남 같은 건 이제 일어나지 않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와 영국의 평범한 책방 주인이 만난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소셜미디어는 온갖 악플로 도배될 것입니다. 시애틀에 사는 남자와 뉴욕에 사는 여자가 라디오 사연을 통해 운명적으로 만나는 건 요즘 시대에 벌어질 가능성은 제로입니다. 라디오 사연 속 남자를 보기 위해 여자는 뉴욕에서 시애틀까지 날아가는 대신 클릭 몇 번으로 간단히 해결할 겁니다.
‘백마 탄 왕자님’류의 계급 판타지도 더 이상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작은 동네 책방 주인이 얼굴도 모른 채 이메일로만 애틋한 감정을 나누던 남자가 동네 상권을 잡아먹는 대형 서점 체인의 대표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유브 갓 메일》도 더 이상 만들 수 없습니다. 《귀여운 여인》처럼 경제적, 사회적 차이를 낭만적으로 받아들일 관객은 이제 없습니다.
스마트폰이 로코영화 속 사랑과 연애를 재미 없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스마트폰이 사랑과 연애를 멸망시킨 건 아닙니다. 2020년대 젊은이들은 스마트폰을 자기들만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사용하면서 그들만의 로코를 만들어가고 있을 뿐입니다. 다만 문제는 영화로 만들 때 재미가 없을 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