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 봉인된 자음을 해제하다’…문자에서 회화로, 한국미술의 새로운 실험
- 세종의 애민정신에서 출발한 한글, 동시대 미술의 시각언어로 세계와 만나다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전남 나주에서 한 예술가의 창작세계를 독립적인 문화 플랫폼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형태의 비엔날레가 진행되고 있다.
나주 송림아트센터에서는 오는 9월 30일까지 '금보성비엔날레(KIM BO SEONG BIENNALE)'가 개최된다. 이번 프로젝트는 '한글, 봉인된 자음을 해제하다(Hangeul: Unsealing the Consonants)'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해제'와 '파종'을 핵심 키워드로 삼아 한글회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조명한다.
비엔날레는 금보성 작가가 40여 년 동안 구축해 온 한글회화를 중심으로 회화, 대형 설치작품, 현장 제작, 레지던시, 학술 프로그램, 교육, 기록 및 아카이브를 통합적으로 구성했다.
가장 큰 특징은 'KIM BO SEONG PERSONAL BIENNALE'라는 프로젝트 명칭에서 알 수 있듯 한 작가의 예술철학과 창작 과정을 하나의 연구·전시 체계로 발전시키는 '개인 비엔날레' 형식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 비엔날레가 다양한 작가와 국제 미술 흐름을 소개하는 것과 달리, 개인의 예술세계를 하나의 문화 콘텐츠이자 기록 자산으로 확장하려는 새로운 시도로 평가된다.
행사는 서울한강비엔날레와 더윤INC가 공동 주최하고 금보성아트센터가 주관한다. THE ARTISTS TIMES-예술가신문, 송림아트센터, 나주미술관이 후원한다.
- 27m 대작〈대한민국> 문자가 거대한 색면이 되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40여 년의 한글회화가 대형 회화와 공간 작업으로 확장된다.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대한민국〉은 약 27m×5.5m 규모의 대작이다.
작품은 ‘ㅎ’의 구조를 중심으로 거대한 색면을 구성하며 문자와 회화, 평면과 공간의 관계를 실험한다. ‘대한민국’이라는 제목을 글자로 직접 읽게 하기보다 관람객이 거대한 색과 형태 속으로 들어가 문자 구조를 시각적으로 경험하도록 한다. 한글이 종이 위의 기록하는 문자를 벗어나 건축적인 규모의 회화로 확장되는 셈이다.
금보성의 한글은 이곳에서 설명해야 이해되는 문자가 아니라 먼저 색과 형태로 마주하는 이미지가 된다.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도 작품 앞에서는 문자 지식에 앞서 색, 선, 형태와 공간을 경험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한글회화는 한국어의 영역을 넘어 현대미술의 보편적인 조형언어가 될 가능성을 시험한다.
- 결함을 조형언어로 바꾸다…구김과 ‘크랙 드로잉’
금보성의 최근 작업은 재료와 제작방식에서도 새로운 실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견의 물성을 활용한 구김 작업에 이어 표면의 균열을 회화적 요소로 끌어들이는 ‘크랙 드로잉(Crack Drawing)’과 요로기법 등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인 회화 보존에서 크랙은 작품의 손상이나 재료적 결함으로 다뤄진다. 그러나 금보성은 역으로 그 균열을 의도적인 조형언어로 전환한다.
감춰야 할 상처를 드러내고, 제거해야 할 흔적을 작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완벽한 표면을 만드는 대신 재료가 움직이고 갈라지며 만들어내는 시간의 흔적을 작품 내부로 받아들인다. 결함과 완성, 파괴와 생성의 관계를 뒤집는 실험이다.
이는 40년 동안 한글이라는 한길을 걸어왔지만 동일한 형식에 머무르지 않고 재료와 기법을 끊임없이 변화시켜 온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사진제공=송림아트센터
- 곡식을 저장하던 창고, 이제 문화를 ‘파종’하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나주 송림아트센터 역시 이번 프로젝트의 중요한 작품적·사회적 배경이다.
송림아트센터는 과거 곡식을 보관하던 미곡창고를 문화예술 공간으로 전환한 곳이다.
한때 농촌의 생산과 생활을 지탱했던 공간이 이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하며 사람과 문화가 만나는 장소가 됐다. 쌀을 저장하던 창고가 예술을 축적하는 공간으로 변한 것이다.
금보성비엔날레가 제시하는 ‘파종’의 개념도 이 장소의 역사와 연결된다.
과거 이곳에서 곡식의 씨앗과 수확을 보관했다면, 오늘날에는 한글이라는 문화적 씨앗을 현대미술로 다시 생명을 움트게 한다. 전시가 끝나는 것으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과 연구, 교육과 기록을 통해 또 다른 장소와 다음 세대로 퍼져나가게 한다는 의미다.
전시와 연계된 송림레지던시에서는 실제 작품 제작도 진행된다. 완성된 작품을 전시장으로 옮기는 일반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작가가 머무르고, 작업하고, 작품이 태어난 장소에서 다시 관람객과 만나는 순환구조를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송림아트센터는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라 금보성비엔날레의 창작 현장이자 실험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