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서울남부지사 경영교육부 윤현진 부장
[비욘드포스트 신용승 기자] 저출생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한때는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이 많아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비교적 쉽게 확보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반전됐다. 생산가능인구가 급감하면서 기업이 사람을 선택하는 시대에서, 사람이 일자리를 선택하는 시대로 노동시장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15~29세 청년층 인구는 782만2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15만2000명 감소했다. 이처럼 청년 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일자리 선택 기준은 더욱 까다로워지고 있다. 이제 청년들은 단순히 '일자리가 있느냐'를 넘어 임금과 근로시간, 작업환경 등 근로여건 전반을 꼼꼼히 따진다. 기업 입장에서도 단순 채용을 넘어, 사람들이 지속해서 머물고 싶어 하는 안전하고 쾌적한 일터를 조성하는 것이 당면 과제가 됐다.
노동시장의 다른 한편에서는 고령층이 핵심 축으로 자리 잡았다. '2026년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결과'를 보면 55~79세 고령층 인구는 1701만7000명이며, 이 중 취업자는 1012만5000명으로 전년 동월보다 34만5000명 증가했다. 고령층 취업자 1000만명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린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시점과 실제 근로를 희망하는 연령 사이의 커다란 공백이다.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를 그만둔 사람들의 평균 연령은 53.0세에 불과했지만, 이들이 장래에 일하기를 희망하는 평균 연령은 73.6세에 달했다. 주된 일자리에서는 일찍 물러나지만, 이후에도 20년 가까이 일을 계속해야 하고 또 계속하고 싶어 하는 사회가 된 셈이다.
여기에 외국인 근로자의 역할도 날로 커지고 있다. '2025년 이민자체류실태및고용조사'에 따르면, 2025년 5월 기준 국내 상주 외국인은 169만2000명에 이른다. 체류자격별로는 재외동포가 24.2%, 비전문취업이 19.0%, 유학생이 14.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경제활동의 중추가 되는 비전문취업 외국인의 취업자 비중은 무려 99.9%에 달한다.
결국 앞으로의 산업현장은 '젊은 내국인 근로자'만을 전제로 설계돼서는 생존할 수 없다. 고령 근로자와 외국인 근로자가 한 팀이 되고, 경력이 짧은 청년 근로자와 숙련된 고령 근로자가 한 공간에서 호흡하는 다원적이고 복합적인 구조로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안전보건 패러다임도 완전히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의 산업안전보건은 '어떻게 하면 작업자가 정해진 안전수칙을 철저히 준수하게 할 것인가'라는 통제 중심의 관점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과연 누가 그 작업을 수행하고 있는가'라는 사람 중심의 관점을 반드시 결합해야 한다.
같은 작업이라도 25세 근로자와 65세 근로자에게 요구되는 신체적 부담과 대처 능력은 결코 같을 수 없다. 똑같은 안전표지와 작업절차서라 하더라도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근로자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의 정확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장 경험이 부족한 신규 근로자에게 베테랑의 직관과 경험을 전제로 한 작업 방식을 요구하는 것 역시 안전 공백을 야기하는 위험한 발상이다.
따라서 미래의 안전보건은 사람을 기존 작업 방식에 억지로 맞추는 틀에서 벗어나, 작업 환경과 시스템을 사람의 특성에 맞추는 방식(Human-centered)으로 진화해야 한다.
고령 근로자가 다수를 차지하는 현장이라면 작업장의 조명 강도, 통로의 너비, 계단 마감, 작업대 높이, 중량물 취급 설비, 반복작업 빈도 등 모든 위험요인을 노화에 따른 신체 변화에 맞춰 재설계해야 한다. 작업 시간과 휴식 주기의 배분, 근골격계 부담 완화, 미끄러짐·넘어짐(아차사고) 예방 등도 고령자의 신체 특성을 고려해 세밀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청년 근로자가 귀해진 현장에서는 신규 근로자가 첫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안전을 체득할 수 있는 체계적인 안전보건교육 시스템이 작동해야 한다. 과거처럼 '눈치껏 알아서 배우라'는 식의 관행은 통하지 않는다. 작업 배치 전 현장 위험요인을 충분히 교육하고, 실제 안전하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완벽히 검증한 뒤 현장에 투입하는 세밀한 교육 프로세스가 정착돼야 한다.
외국인 근로자가 늘어날수록 안전문화 전파와 정보 전달 방식도 과감하게 혁신해야 한다. 단순히 안전교육 자료를 번역해 제공하는 일방향적 방식을 넘어,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한 그림과 영상, 작업 전 시범교육(TBM) 등 언어장벽을 무력화하는 현장 친화적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교육을 '몇 시간 실시했다'는 서류상의 기록이 아니라, 근로자가 위험을 '정확히 이해하고 행동으로 실행할 수 있는가'에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핵심은 안전보건의 대상을 특정 집단으로 범주화하거나 한정하지 않는 전사적인 안전문화의 정착이다. 고령 근로자라고 해서 무조건 위험에 취약한 것도 아니며, 외국인 근로자라고 해서 늘 사고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젊은 근로자라고 해서 안전이 저절로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본질은 연령, 언어, 숙련도, 직무, 작업환경 등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개인별 위험요인'을 데이터 기반으로 찾아내고, 그에 맞춤형 안전 솔루션을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의 산업안전이 규격화된 '평균적인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면, 앞으로의 산업안전은 '다양성을 가진 근로자들이 공존하는 현장'을 포용하고 전방위적으로 보호하는 방향으로 대전환을 이뤄야 한다.
인구구조의 지각변동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생산가능인구의 급감과 초고령화 흐름 속에 외국인력의 비중은 갈수록 커질 것이다. 지금의 변화는 단순히 노동력의 숫자가 줄어드는 차원을 넘어, 산업현장을 구성하는 사람의 DNA 자체가 바뀌는 구조적 변화다.
이러한 격변 속에서 기업이 오직 인력 확보에만 매달린 채 안전보건을 과거의 타성대로 유지한다면, 새로운 노동시장에서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기란 불가능하다. 이제 안전은 '사람이 부족하니 동원 가능한 인력을 최대한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귀해진 근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을 온전히 지켜내는 것'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노동력 절벽을 향해 가는 지금,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빽빽한 서류상의 안전수칙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변화된 사람을 이해하고, 변화된 노동시장에 맞게 일하는 방식과 안전문화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이다. 청년도, 고령자도, 국적이 다른 근로자도 차별 없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일터, 이제 대한민국 산업안전보건의 새로운 표준은 바로 여기에서 시작돼야 한다.
신용승 기자 credit_v@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