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딸이 지원했던 회사에서 불합격 통보를 받았습니다. 들어보니 대기업은 아니지만 자기 업계에서 제법 탄탄하게 입지를 다진 중견 기업입니다. 불합격을 알리는 이메일을 받으면 실망하고 기분이 나빠지는 게 일반적인데 그 회사 메일을 받고는 그렇지 않더랍니다.
회사는 지원자의 자질을 꼼꼼히 검토했고 자기 회사와는 어떤 부분이 맞지 않는지, 채용할 수 없는 회사의 입장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지원자의 능력이 제대로 쓰일 수 있는 곳에서 잘 발휘하면 좋겠다는 격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메일에는 지원자의 서류를 허투루 보지 않았다는 실증적 증거와 진지하고 성실하게 검토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얘기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친구의 딸은 메일을 읽고 서운한 마음이 풀렸으며 자신이 무엇을 보완해야 할 지를 반성하게 되었고 격려와 함께 희망을 갖게 해 줘서 다시 용기를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답니다. 그리고는 비록 떨어졌지만 그 회사의 팬이 됐고 그 회사를 응원하게 됐다고도 말했습니다.
정성과 진심을 담은 이메일 한 통의 힘입니다. 그 회사는 메일 하나로 지원자와 지원자 가족을 팬으로 만들었으며 친구네 가족은 앞으로 같은 값이면 그 회사 제품을 살 것입니다. 돈을 많이 들인 화려한 광고나 홍보문구, 마케팅 캠페인보다 더 강력하게 고객의 마음을 움직인 것입니다.
친하게 지내는 가까운 사람과는 아무래도 더 가볍고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카카오톡 같은 소셜미디어를 이용하지만 서로 잘 모르거나 비즈니스 같은 공식적이고 격식을 갖춘 문의와 답변은 주로 이메일을 이용합니다. 그렇다면 친구의 사례처럼 이메일은 생각보다 위력이 큰 수단입니다.
어떻게 하면 사무적이며 기계적이지 않게, 마음을 움직이고 공감할 수 있는 이메일을 쓸 수 있을까요? 이슬아 작가의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권해 드립니다. 비슷한 내용의 책이 많이 있지만 누구한테 쉽게 들을 수 없고 실전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들을 소개합니다. 예를 들면, ‘돈 벌기 위한 일에서는 무조건 최대 금액을 끌어낸다’ ‘미지근한 상대의 가슴에 투명하고도 뜨끈한 펀치를 꽂는 법’ ‘상처주지 않고 거절하는 방법’ ‘사과 메일의 예술적 경지’ 등 비즈니스에서 흔히 맞닥뜨리는 상황에서 도움이 되는 꿀팁들이 담겨 있습니다.
인상적으로 본 건 ‘사양하는 이메일 작성 기술’인데 작가만의 비법은 ‘빠고노더’입니다. ‘빠르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노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 다음 더 좋은 기회로 만나기를 기대한다’가 핵심입니다. 상대에게 미안한 내용이라 가능한 뒤로 미루는 편인 나는 ‘절대 시간을 끌면 안 된다’는 경고로 들렸습니다.
단순히 이메일 잘 쓰는 법이 아니라 상대를 이해하고 내 입장을 설득하면서 비즈니스 컨디션을 최상으로 만들기 위해 자기 수준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자기계발 에세이 같은 느낌입니다. 동시에 작가가 겪은 시행착오와 성찰에서 오는 조언이 빈말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특히 ‘잘 쓴 이메일을 주고받는 사람들의 일상은 어딘가 다르다’는 울림이 오래 남습니다. 이메일 쓰기에 관한 책이 이렇게 재밌을 수도 있구나 하는 ‘읽는 즐거움’은 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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