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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말의 온도

입력 : 2025-12-24 08:06

[신형범의 千글자]...말의 온도
올해도 이제 꼭 일주일 남았습니다. 저절로 한 해를 돌아보게 되는 때이기도 합니다. 말이 많은 편이 아닌 데다 말 많은 걸 좋아하지 않아서 나에게 말은 늘 서툴고 다루기 까다로운 물건 같습니다. 올 한 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서 죄를 짓진 않았는지, 때와 상황에 맞지 않은 말로 분위기를 흩트린 적은 없었는지 반성해 봅니다.

요즘은 말이 너무 빨리 퍼집니다. 확인되지도 않은 말들이 굴러다니는 속도만큼 오해도 쉽게 쌓입니다. 문제는 한번 나간 말은 주워 담기가 불가능하고 되돌린다 하더라도 원래 상태로 회복하기는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더더욱 말의 속도는 조금 늦추고 온도는 조금 높여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사람의 체온이 36.5도인 것처럼 말에도 온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온도계로 잴 수는 없지만 말에는 기본온도가 있고 여기에 진실함이 더해지면 온도가 1도 오르고 책임지겠다는 진정성이 더해지면 또 1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까지 담으면 가장 맛있는 온도로 완성됩니다. 거꾸로 말이 차가워지면 상대를 사람이 아닌 대상으로 대하게 되고 불신이 더해져 말의 온도는 내려갑니다.

요즘 정치를 보니까 통치의 말은 특히 더 조심스러워야 할 것 같습니다. 공직자의 말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주는 약속이기 때문에 말할 때마다 지금 하는 말이 누군가를 살리는지, 아니면 좌절을 주고 상처를 남기는지, 자신이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말인지를 수시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공직자의 말은 나오는 순간 기록되고 책임이 되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신뢰를 얻으려면 말을 통해 이기는 법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법부터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왜 이제 왔냐?’는 말은 분노를 키우지만 ‘그동안 많이 답답하셨죠?’라고 하면 듣는 사람은 숨을 고르게 됩니다.

그렇다고 말을 마냥 무겁게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시민들이 정작 힘들어하는 건 답이 없는 불안입니다. 이 때 필요한 건 날 선 논쟁이 아니라 서로를 붙잡아주는 포용의 언어입니다. 말은 베고 찌르며 서로의 다름을 공격하는 도구가 아니라 갈라진 생각을 잇는 다리가 돼야 합니다.
답이나 결론을 말하기 전에 내 사정을 이해해 주는지 먼저 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충분히 듣고 들은 말을 확인하고 모르면 모른다고 말합니다. 대신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지키면 됩니다. 가능하면 말 끝에 ‘고맙다’는 말을 붙이면 상황은 더 부드러워집니다. 결국 말의 온도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이게 돌아가는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는 먼저 도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설득하기 전에 먼저 상대를 이해하고 이기기 전에 함께 살길을 찾는 말, 그게 인간관계나 공동체를 지키는 현실적인 말하기 기술입니다. 따뜻하되 진실하고 책임지는 그런 말이 쌓일 때 삶도 주변도 편안해지고 서로의 품격이 올라갑니다. 새해에는 매일매일 건네는 말 한마디의 온도를 잠깐씩이라도 점검해 봐야겠습니다. 상대에게 나의 온기가 닿을 수 있는 따뜻한 말이기를 바라면서.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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