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전 세계 의료현장에서 30년 이상 사용…안전성과 임상 경험 축적”
산업계 “미국보다 앞선 피부 ECM 기술 확보…글로벌 경쟁력 저해해선 안 돼”
[비욘드포스트 김신 기자] 국내 피부 주입형 인체조직 ECM(세포외기질)을 둘러싼 제도 논의가 이어지는 가운데 의료계와 산업계는 새로운 규제를 일률적으로 도입하기보다, 이미 운영 중인 인체조직 안전관리 체계를 기반으로 필요한 부분을 과학적으로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는 인체 유래 진피와 ECM 소재가 화상, 외상, 성형·재건수술 등 세계 의료현장에서 30년 이상 활용되며 안전성과 임상 경험이 축적돼 왔다고 평가한다. 주입형 제품도 제품별 가공 정도와 조직 구조의 유지 여부, 사용 목적 및 실제 위험도를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며, 전체 제품군을 동일한 고위험군으로 간주하는 규제는 합리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국내 인체조직은 현행 인체조직법과 우수인체조직관리기준(GTP)에 따라 공여자 적합성 평가, 감염성 질환 검사, 가공과 품질시험, 보관·유통, 환자별 이식기록, 추적관리 및 이상사례 보고까지 전주기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이러한 인체조직 특화 관리체계를 유지하면서 실제 임상자료와 시판 후 안전성 데이터를 바탕으로 관리 수준을 고도화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지난 28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주입형 ECM 관련 심포지엄에서도 의료계 전문가들은 현행 인체조직 관리체계의 유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원재 대한성형외과학회 이사장 겸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는 “ECM 기반 인체조직은 화상, 외상, 재건수술 등 다양한 의료영역에서 전 세계적으로 30년 이상 사용되며 상당한 안전성과 임상 경험이 축적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인체조직은 공여자 평가와 감염 검사, 조직은행 허가, 가공·유통 및 환자 추적관리까지 일반 의료기기와는 다른 별도의 법체계에서 관리되고 있다”며 “인체조직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의료기기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레슬링 경기에 유도 규칙을 적용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종희 대한피부과학회 미래혁신이사 겸 삼성서울병원 피부과 교수는 “인체 ECM 주입제를 원칙적으로 전면 부정할 것이 아니라 제품별로 원래 피부조직의 구조적 특성이 어느 정도 유지되는지 살펴야 한다”며 현행 인체조직법 체계 안에서의 과학적 평가 필요성을 밝혔다.
배하석 이대목동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도 “임상평가가 필요한 영역과 비교적 간소한 관리가 가능한 영역을 위험도에 따라 구분하면 연구개발이 촉진되고 검증된 제품을 의료현장에 보다 신속하게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기증된 사람의 지방조직을 가공한 주입형 ECM 제품인 레누바(Renuva)가 약 10년간 안면과 신체의 연조직 결손 및 볼륨 감소 부위에 사용돼 왔다. 레누바는 세포를 제거한 지방조직 유래 ECM으로, 미국에서는 인체 세포·조직 기반 제품인 HCT/P 체계에서 관리되고 있다. 현재까지 공개된 자료에서는 레누바와 관련해 제품 사용을 중단시킨 중대한 규제 조치나 대규모 안전성 리콜은 확인되지 않는다. 미국 의료진과 연구자들도 철저한 공여자 선별, 무균 가공, 잔류물·멸균·생체적합성 시험을 안전관리의 핵심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 기업들도 인체조직 기반 재생형 주입제품의 안면·피부 적용을 확대하고 있다. 타이거 에스테틱스는 기증된 인체 지방조직을 기반으로 안면과 손의 개선을 목표로 한 주입형 제품 dermaClae를 2027년 초 출시할 예정이라고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밝혔다. 회사는 이를 위해 피부과와 메디컬 에스테틱 시장을 담당하는 별도 사업조직까지 구성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지방조직 유래 주입형 제품이 먼저 상용화됐고, 진피조직의 복잡한 섬유구조와 ECM 성분을 유지하면서 균일한 주입형 입자로 가공하는 기술은 상대적으로 개발 난도가 높은 분야로 평가된다.
산업계는 국내 기업들이 탈세포화, 미세입자화, 구조 보존, 잔류물 관리와 주사 가능성을 동시에 구현해야 하는 진피 유래 ECM 가공기술을 연구개발을 통해 이미 확보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진피는 치밀한 콜라겐 섬유망과 높은 기계적 강도를 가지고 있어 세포와 불순물을 제거하면서도 ECM 구조를 보존하고 균질한 입자로 제조하기가 더 어렵다는 설명이다. 국내 기업들은 이러한 공정상의 난점을 해결하면서 피부 인체조직을 주입 가능한 형태로 가공하는 기술을 상용화해 미국보다 한발 앞선 시장을 형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관련 산업 생태계도 확대되고 있다. 엘앤씨바이오의 리투오(Re2O)를 비롯해 한스바이오메드, 휴메딕스, 휴젤, GC녹십자웰빙, 시지메드텍, 바이오비쥬, 엠에스바이오 등이 인체조직 기반 의료소재와 ECM, 재생의료 및 스킨부스터 분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으며 코오롱제약, HLB생명과학, 제테마 등도 관련 시장에 참여하고 있다.
산업계 관계자는 “미국도 인체 지방조직을 활용한 주입형 제품을 장기간 사용해 왔고, 최근에는 안면과 피부 적용을 겨냥한 후속 제품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며 “국내는 가공 난도가 더 높은 피부 진피조직 기반 주입형 ECM 기술을 선제적으로 상용화해 글로벌 경쟁 우위를 확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인체조직 추적관리 체계를 무시한 중복 규제나 성급한 분류 변경으로 연구개발과 수출 경쟁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인체조직 ECM 논의를 규제 강화와 산업 육성의 대립 구도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인체조직은 일반적인 합성 의료소재와 달리 공여자에서 최종 이식 환자까지 연결되는 추적관리가 안전관리의 핵심이므로, 현행 인체조직법 체계를 유지하면서 환자 정보 제공, 이상사례 보고와 시판 후 안전성 평가를 강화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설명이다.
좌장을 맡은 양성일 분당서울대병원 교수는 “ECM 산업은 바이오와 미용의료 기술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는 분야”라며 “국민 안전과 산업 혁신을 함께 고려하는 균형 있는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참석한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는 “해외 사례와 관련 제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바탕으로 관리체계 개선 방향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고, “인체조직은 인체조직법 체계에 맞게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관련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율하고 있다”며 산업계의 성장 가능성까지 고려해 합리적인 결론을 마련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의료계와 산업계는 “이미 축적된 안전성과 임상 경험, 인체조직법의 추적관리 체계를 존중하면서, 필요한 사항을 보완하는 것이 국민 안전을 확보하고 한국의 피부 인체조직 ECM 기술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도록 하는 가장 합리적인 정책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비욘드포스트 김신 기자 bp_ks@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