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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임박…하나은행, 호주·영국서 해법 찾는다

신용승 기자 | 입력 : 2026-09-04 14:56

하나은행 본점 전경./하나은행
하나은행 본점 전경./하나은행
[비욘드포스트 신용승 기자] 정부의 기금형 퇴직연금 구체안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하나은행이 호주·영국의 선진 운용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도 도입 대비 그룹 차원의 선제적 준비에 나서고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부와 노사정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에 뜻을 모은 데 이어, 이달 중 정부의 구체적인 실행 방안 발표가 예정되면서 기금형 제도 도입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현재 정부는 기존 계약형 제도와 기금형 제도를 병행하면서 금융기관 개방형·연합형·공공기관 개방형 등 다양한 형태의 기금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가입자의 선택권을 대폭 넓히고,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제도 시행을 앞두고 금융권에서는 선제적으로 기금형 제도를 안착시킨 해외 선진 사례에 주목하고 있다. 국내 환경에 맞는 안정적인 운용 방식과 체계적인 관리 구조를 수립하기 위한 벤치마킹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하나은행은 글로벌 기금형 제도의 성공 요인과 운용 노하우를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호주와 영국의 주요 연금 기관들을 직접 방문했다. 호주에서는 머서(Mercer)와 CFS 등 소매형 기금을 비롯해 ART, 어웨어 슈퍼(Aware Super) 등 산업형 기금 및 자산운용사를 포함해 10개 기관을 조사했다. 영국에서는 최대 기금인 네스트(NEST)를 포함해 총 6개 기금을 방문해 제도의 발전 역사부터 지배구조, 자산운용, 가입자 관리 방식까지 전 과정을 정밀 분석했다.
호주 퇴직연금 시장의 핵심은 단연 장기 분산투자다. 호주는 퇴직연금을 수십 년에 걸쳐 축적되는 장기 자산으로 정의하고, 주식과 채권뿐만 아니라 부동산, 인프라 등 다양한 자산군에 고루 투자하는 구조를 안착시켰다. 1992년 슈퍼에뉴에이션(Superannuation) 제도를 도입한 이래 적립부터 운용, 성과관리까지 제도 전반을 '노후자산 형성'이라는 단일 목표 아래 일관되게 설계했다. 여기에 강력한 세제 혜택으로 자발적 가입을 유도하고, 중도인출을 엄격히 제한해 연금자산의 조기 소진을 방지했다.

운용 자율성을 부여하는 대신 사후 관리 기준은 엄격하다. 호주 건전성감독청(APRA)은 Performance Test를 실시해 기금의 운용 성과를 지속적으로 평가하며, 성과가 저조한 기금에 대해서는 개선 요구는 물론 신규 가입 제한이라는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한다.

영국의 경우 2012년 자동가입(Auto-Enrolment) 제도를 도입하며 가입 기반을 폭발적으로 넓혔다. 제도 도입 전 47%에 불과했던 퇴직연금 가입률은 2025년 82%까지 치솟았다. 가입 확대를 견인한 핵심 축은 여러 사업장이 하나의 기금에 참여하는 마스터 트러스트(Master Trust) 구조로, 독립적인 트러스티 이사회가 기금 운영과 주요 의사결정을 전담하며 가입자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호하는 거버넌스를 확립했다.

운용 과정에서도 대부분의 가입자는 디폴트펀드를 통해 별도의 투자상품을 선택하지 않아도 전문가가 설계한 방식에 따라 퇴직연금이 운용되도록 했다. 금융 지식이 부족한 가입자의 선택 부담을 줄이면서도 체계적인 자산배분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특히 영국은 기존 계약형과 새로운 기금형 제도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는 구도를 형성했다. 두 제도가 양립하며 경쟁하는 과정에서 연금자산관리 서비스의 질적 향상이 유도됐고, 가입자가 부담하는 수수료 수위 역시 대폭 낮아졌다. 여기에 Value for Money(VfM) 평가를 도입해 투자성과뿐만 아니라 수수료, 서비스 등을 종합 평가함으로써 경쟁력이 부족한 기금의 개선이나 통합을 유도해 대형 사업자 중심의 시장 재편을 촉진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이번 해외 현지 조사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단일 은행 차원에 묵혀두지 않고 하나금융그룹 전사 차원의 대응 전략으로 확장했다. 현지 조사 직후 관련 계열사들과 해외 선진 사례를 공유하며, 국내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 시 필요한 운용 역량과 대응 방향을 논의하는 전문 회의체를 지속 운영해오고 있다. 장기 자산운용, 독립적 거버넌스, 전문 운용체계, 성과평가 및 가입자 관리 등 핵심 요소를 한국적 제도 환경에 맞게 이식하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 중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호주와 영국은 각각 다른 경로로 퇴직연금 제도를 발전시켜 왔지만 가입자의 노후자산을 장기간 축적하고 전문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제도와 운용체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왔다는 공통점이 있었다"며 "해외에서 확인한 내용을 그룹 차원으로 확대해 국내 적용 가능성과 향후 제도 변화에 대한 대응방향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금형 도입이 가시화된 만큼 이제 관건은 제도 도입 이후의 운영방식이다. 가입자의 장기적인 이익을 중심으로 전문적인 자산운용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성과와 비용, 서비스 등을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관리체계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호주의 Performance Test나 영국의 VfM처럼 운용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필요한 경우 개선을 유도하는 제도적 장치도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기존 계약형과 새롭게 도입되는 기금형이 각자의 장점을 바탕으로 경쟁하며 시장 전체의 운용성과와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어느 한 제도가 다른 제도를 대체하기보다 가입자가 각자의 상황에 맞는 방식을 선택하고, 사업자 간 경쟁을 통해 퇴직연금 시장 전반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향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호주와 영국 역시 오랜 기간 제도를 보완하면서 현재의 퇴직연금 체계를 만들어왔다"며 "우리나라 역시 해외 사례를 바탕으로 가입자의 장기적인 노후자산 형성을 중심에 두고 전문적인 운용과 성과관리, 가입자 선택권 등이 균형을 이루는 한국형 기금형 모델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나은행도 호주와 영국에서 직접 확인한 경험과 이를 바탕으로 이어온 그룹 차원의 논의를 토대로 향후 정부의 제도 방향에 맞춰 필요한 역량을 선제적으로 준비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나은행은 해외 벤치마킹에서 확인한 장기 자산배분과 철저한 성과관리, 가입자 중심의 서비스 경쟁 원칙을 실제 퇴직연금 사업 전략에도 적극 반영해 왔다. 장기간 축적되는 연금자산의 특성에 맞춰 개별 상품 중심의 투자에서 벗어나 포트폴리오 기반 자산관리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해 금융권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 일임운용 서비스'를 출시했으며, 은행권 최초로 전문가 선택 포트폴리오와 자산전략을 정기 제공하는 '하나MP 구독 서비스' 등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은퇴 이후의 현금흐름까지 고려해 적립기에서 인출기로 연금 관리 영역을 확대하고 있으며, 대면 상담과 전문 인력을 활용한 손님 케어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연금 전문 상담 센터인 '연금 더드림 라운지'를 지방 권역까지 확대하는 등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운용 성과에 대한 사후관리도 강화해 성과가 부진한 디폴트옵션 상품을 업계 최초로 변경하는 등 상품을 단순히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개선하는 체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해외 선진 연금 시장에서 확인한 원칙을 국내 퇴직연금 환경에 맞게 하나은행만의 자산관리 방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는 셈이다.

신용승 기자 credit_v@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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