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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이 나주를 부른다, 한 화가가 도시를 움직이는 방식

김민혁 기자 | 입력 : 2026-09-04 14:39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초가을이면 한국 미술의 시계는 빨라진다. 광주비엔날레와 프리즈 서울, 키아프를 비롯해 전국 곳곳의 아트페어와 전시가 동시에 관객을 맞는다. 해외 컬렉터와 미술 관계자들이 한국을 찾고,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도 한국 현대미술을 경험하기 좋은 계절이다.

그런데 이 시기에 주목해볼 만한 장소가 있다. 서울도, 거대한 미술시장도 아닌 전남 나주다.
나주에서 열리고 있는 금보성비엔날레는 하나의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한 사람의 예술가가 작품만으로 사람을 움직이고, 한 도시의 문화적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가.

금보성은 40여 년 동안 한글을 회화의 언어로 탐구해왔다. 그의 화면에서 한글은 문장이 아니다. 자음과 획은 해체되고 색과 면으로 이동하며 거대한 추상의 구조를 만든다. 특히 나주에서 선보이는 대형 한글 작품은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가’를 묻기보다 ‘문자가 어떻게 그림이 되는가’를 경험하게 한다.

이 지점에서 외국인 관람객의 존재는 중요하다. 한글을 읽지 못해도 작품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읽지 못하기 때문에 문자에 담긴 뜻보다 선과 면, 색채와 리듬을 먼저 발견한다. 한글이 한국인의 문자에서 세계인이 감상할 수 있는 시각언어로 이동할 가능성이 여기에서 생겨난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전시를 움직이는 힘의 방식이다.

금보성에게는 100만 구독자 규모의 유튜브 채널과 그가 ‘문화의병’이라고 부르는 온라인 네트워크가 있다. 전시장을 찾은 사람이 사진을 찍고 영상을 올리며, 그것을 본 또 다른 사람이 나주를 찾아온다. 다시 그 방문이 새로운 콘텐츠가 된다.

과거 지역문화 홍보가 행정기관의 예산과 광고에 크게 의존했다면, 이제 한 명의 예술가도 자신의 콘텐츠와 네트워크를 통해 도시를 외부와 연결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금보성비엔날레가 주목할 만한 이유는 관람객 숫자만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문화 확산 방식의 변화에 있다.

그리고 이 실험이 나주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은 우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사진=송림아트센터 제공
나주는 조선 초기 집현전 학자 신숙주와 깊은 연고를 가진 지역이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집현전 학자들이 새로운 문자문화의 시대를 열었다면, 수백 년이 지난 오늘 나주에서는 한글을 현대미술의 언어로 바꾸려는 또 다른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물론 역사적 인연만으로 오늘의 예술적 가치를 설명할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역사를 현재의 문화자산으로 어떻게 다시 생산하느냐에 있다.

한글을 박물관 안의 유산으로만 보존하는 것과 한글을 동시대 작가들이 끊임없이 해체하고 변형하며 세계와 소통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문화유산은 보존될 때 생명을 유지하지만, 새롭게 창작될 때 미래를 얻는다.

그런 의미에서 금보성비엔날레는 한글을 ‘기념하는 전시’라기보다 한글을 다시 파종하는 전시에 가깝다.

세종의 시대에 한글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면, 오늘의 한글은 회화와 디자인, 건축과 미디어를 넘나들며 세계와 만날 수 있다. 나주는 그 새로운 뿌리가 내려지는 하나의 실험장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지역에 미술관 하나를 세운다고 문화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유명한 행사를 한 번 개최한다고 도시의 문화적 정체성이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도시에는 그곳을 찾아가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나주를 찾아 거대한 한글 작품 앞에 서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들이 다시 나주의 이야기를 외부로 가져간다면 이미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금보성비엔날레가 남겨야 할 가장 중요한 성과 역시 여기에 있다. 한 작가의 성공을 넘어 ‘금보성을 보러 나주에 왔다가, 나주를 기억하고 돌아가는 사람’을 얼마나 만들어낼 것인가이다.

문화는 언제나 사람을 통해 이동한다.

지금 나주에서는 한글이 작품이 되고, 작품이 사람을 부르고, 사람이 다시 도시를 알리는 새로운 문화의 순환이 시작되고 있다.

세종의 한글이 백성을 향한 문자였다면, 오늘 나주에서 다시 태어나는 한글은 세계를 향한 미술언어가 될 수 있다.

그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지금 나주에서 진행되는 금보성비엔날레를 한 번의 전시가 아니라 하나의 문화적 실험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다.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bp_kmh@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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