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개국 32곳에 수원형 화장실 지원…필리핀 무엘레에도 ‘해우재’ 준공
내년 세계화장실협회 창립 20주년 총회 수원 개최…국제협력 더 확대
해우재부터 미술관옆화장실까지…생활시설을 도시 문화콘텐츠로 육성
지난 13일 필리핀에서 열린 2026 세계화장실협회 총회에서 회장인 이재준 수원특례시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수원시
수원=비욘드포스트 송인호 기자 이재준 수원시장이 수원에서 시작된 화장실문화운동의 가치를 세계로 넓히고 있다. 개발도상국에 깨끗하고 안전한 공중화장실을 지원하는 동시에 화장실을 환경보전과 관광, 자원순환을 아우르는 공공 공간으로 발전시키는데 힘을 쏟고 있다.
수원의 화장실 정책은 위생시설 개선에 머물지 않는다.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확충하고, 지역의 역사와 자연을 담은 공간을 조성해 도시의 품격과 관광 경쟁력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세계화장실협회 회장인 이 시장은 20일 “깨끗한 화장실은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도시의 품격을 높인다”며 “수원이 환경과 관광을 아우르는 새로운 화장실 문화를 선도하며 그 가치를 세계로 확산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필리핀 무엘레 지역에 건립된 수원형 화장실 ‘해우재'. /수원시
◇필리핀 무엘레에 들어선 ‘해우재’…해양환경 지키는 공공시설
시에 따르면 지난 14일 필리핀 푸에르토 갈레라 무엘레 헤리티지파크에 수원형 공중화장실 ‘해우재’가 준공됐다. 수원시가 세계화장실협회와 함께 해외에 조성을 지원한 32번째 화장실이다.
무엘레 일대는 아름다운 해변과 다양한 해양생물을 만날 수 있는 관광지다. 보트 관광과 호핑 투어 등을 위해 하루 1500명 이상이 오가는 만큼 공중위생시설 확충이 필요한 곳이었다. 관광객의 편의뿐 아니라 해양 오염을 줄이기 위해서도 적절한 화장실 시설이 중요했다.
시는 필리핀 관광부, 현지 지방정부와 협력해 상수도와 정화조를 연결하고 남녀 공간을 분리한 화장실을 조성했다. 다목적화장실과 관리실도 갖춰 이용 편의와 지속적인 관리를 함께 고려했다.
이번 사업은 화장실 지원이 주민과 관광객의 생활환경 개선을 넘어 지역의 자연환경을 보호하는 기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관광객이 찾는 장소에 필요한 공공시설을 마련하고 관리 여건까지 갖추는 방식이다.
시는 2008년부터 세계화장실협회와 개발도상국 공중화장실 건립사업을 추진해 왔다. 협회가 19개국에 건립한 52개 화장실 가운데 시가 지원한 시설은 12개국 32곳이다.
캄보디아 시엠립 앙코르와트 유적지와 네팔 카브레 척수재활원, 튀르키예 얄로바시 페리터미널 인근, 몽골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동상 주변 등 현지 수요가 있는 곳에 수원형 화장실을 조성해 왔다.
지난 13일 필리핀에서 열린 2026 세계화장실협회 총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수원시
◇이재준, 국제협력 주도…내년 수원서 새 비전 제시
이 시장은 지난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2026 세계화장실협회 제16차 이사회 및 제8차 총회’를 주재했다. 회의에는 미국과 일본 등 11개국에서 회원 60여 명이 참석해 화장실문화의 발전 방향을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내년 협회 창립 20주년을 계기로 활동 범위를 확대하기로 뜻을 모았다. 화장실 환경개선과 함께 자원재순환, 지속가능한 관광, 공공위생을 주요 과제로 다루겠다는 방향이다.
이를 구체화할 제9차 총회는 내년 수원에서 열린다. 협회는 이 자리에서 공식 선언문을 선포하기로 결의했다. 수원에서 출발한 화장실문화운동이 앞으로 어떤 가치를 실천할 것인지 국제사회와 공유하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2023년부터 세계화장실협회를 이끌고 있는 이 시장은 공중화장실 현대화와 학교 화장실 개선에 힘쓰는 동시에 국제협력망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지역에서 축적한 행정 경험을 해외 지원과 교류로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7년 11월 창립한 협회에는 현재 21개국의 18개 기관과 개인회원 96명이 참여하고 있다. 2019년에는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적 지위를 획득하며 국제적인 활동 기반도 마련했다.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있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변기 모양의 홪장실문화전시관 해우재 전경. /수원시
◇심재덕이 뿌린 씨앗…30년 가까이 이어온 화장실문화
수원의 화장실문화는 오랜 정책과 실천이 쌓인 결과다. 출발점에는 민선 1·2대 수원시장을 지낸 고 심재덕 전 시장이 있다.
‘미스터 토일렛’으로 불린 심 전 시장은 화장실이 도시의 품격을 보여준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1990년대 중반부터 공중화장실 개선에 힘을 쏟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를 준비하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화장실을 만드는 사업을 적극 추진했다.
이러한 흐름은 화장실을 단순한 편의시설에서 도시의 인상을 결정하는 공공 공간으로 바라보는 정책으로 이어졌다. 이 시장은 그 토대 위에서 시설 개선과 문화콘텐츠 육성, 국제협력을 함께 추진하고 있다.
상징적인 공간은 장안구 이목동의 화장실문화전시관 ‘해우재’다. 변기를 형상화한 외관으로 눈길을 끄는 이곳에서는 화장실의 역사와 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심 전 시장이 기증한 건물을 리모델링해 2010년 10월 전시관으로 문을 열었으며 지난 7월 누적 관람객 200만 명을 넘어섰다. 화장실이라는 생활 속 소재가 수원만의 문화관광 자원으로 자리 잡은 사례다.
인근 해우재문화센터에는 세계화장실협회가 자리하고 있다. 화장실문화의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과 국제협력을 추진하는 조직이 함께 수원의 정책적 연속성을 보여준다.
수원시립미술관과 비슷한 외관의 미술관옆화장실. /수원시
◇미술관 닮고 성곽과 어우러지고…화장실도 관광콘텐츠
수원의 화장실은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디자인으로도 주목받는다. 위생과 편의에 휴식과 문화 경험을 더하는 방식이다.
화성행궁 광장 인근 수원시립미술관 옆에 있는 ‘미술관옆화장실’은 미술관과 닮은 외관이 특징이다. 내부에는 미디어 갤러리를 마련해 문화 공간의 성격을 더했다. 영유아 동반 가족을 위한 가족화장실과 장루 이용자를 위한 시설도 갖췄다.
광교산 등산로 초입의 ‘반딧불이화장실’에서는 자연을 조망할 수 있다. 미술작품과 책도 비치돼 산행 중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창룡문화장실’은 수원화성 성곽의 곡선과 어우러지는 디자인으로 전통과 현대의 건축미를 담았다. 수원화성 주변의 기와지붕 화장실 역시 역사 경관과의 조화를 고려한 시설이다.
독특한 형태로 지역의 이야기를 전하는 화장실도 있다. 수원월드컵경기장 주변 ‘축구공화장실’과 인계예술공원 ‘염원화장실’은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를 기념해 축구공 모양으로 조성됐다.
칠보산의 보물 중 하나인 맷돌을 형상화한 ‘칠보맷돌화장실’, 파장동에서 광교산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항아리화장실’도 주변 풍경에 개성을 더한다. 화장실이 길을 찾는 이정표이자 방문객이 기억하는 장소가 된 것이다.
주변 환경과 어우러지는 모습의 광교중앙공원화장실. /수원시
◇공중·개방화장실 300곳…시민 일상에서 출발한 세계화
시는 화장실문화를 뒷받침할 행정체계도 운영하고 있다. 전국 최초로 화장실문화 업무 전담 조직을 두고 시설 관리와 정책 확산을 추진해 왔다.
현재 시가 관리하는 공중화장실은 182곳이다. 민간 소유 화장실을 시민에게 개방하는 제도를 통해 118곳을 추가로 지원하며 시민과 관광객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 300곳의 운영 기반을 갖췄다.
시설의 완성도는 수상 실적으로도 이어졌다. 행정안전부와 한국화장실문화협회가 주관하는 ‘아름다운 화장실 대상’이 1999년 시작된 이후 올해까지 수원에서는 대상 3회를 포함해 총 32곳의 화장실이 수상했다.
이 시장이 추진하는 화장실문화 세계화의 바탕은 시민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공공서비스다. 깨끗하고 편리한 시설에 지역의 문화와 환경을 담고, 그 경험을 공중위생시설이 필요한 해외 지역과 나누는 것이다.
수원시는 앞으로도 세계화장실협회와 국제협력을 이어가면서 화장실의 가치를 환경과 관광, 인간의 존엄이라는 영역으로 넓혀 나갈 계획이다. 내년 수원에서 열리는 창립 20주년 총회는 그 방향을 구체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