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달리는 사람들(언제부턴가 ‘러닝크루’라는 말을 쓰기 시작하더군요)이 부쩍 늘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좀 이상한 현상입니다. 우리보다 먼저 잘살게 된,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의 선례를 보면 대개 일인당국민소득(GDP)이 15,000달러를 넘으면서 달리는 인구가 늘기 시작합니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이라는 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뛰는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다가 GDP 2만~2만5천 달러가 되면 그 때부터 달리는 인구는 오히려 줄어듭니다. 뛰는 사람들이 생활에 여유가 생기면서 장비가 비싸고 비용이 많이 드는 익스트림 스포츠로 빠져나간다는 분석입니다. 그러다 GDP가 30,000달러를 넘어서게 되면 그 인구들은 다시 캠핑이나 비박(biwak) 같은 자연 친화적인 쪽으로 옮겨가는 게 일반적인 패턴입니다. 돌아보면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이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지나온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인당 GDP 35,000달러를 바라보는 상황에서 달리는 인구가 다시 늘어나는 건 상당히 특이한 현상입니다. 이런 예외적인 현상을 사회적 질문과 결부시켜 원인과 과정, 특이점을 분석해 낼 능력도 내겐 없고 또 그럴 필요성도 못 느낍니다. 다만 달리기를 오랫동안 해 온 사람으로서 관심이 가는 건 사실입니다.
나는 2004년부터 시작했으니 지금까지 20년 동안 달린 셈입니다. 일주일에 서너 번, 그날 컨디션에 따라 다르지만 한번 뛸 때 약 10km를 뛰니까 지금도 한 달 평균 120km 정도를 달립니다. 흔히 생각하는 신체적 이점 외에 내가 생각하는 달리기의 장점은 이렇습니다.
첫째, 아주 좋은 힐링 수단입니다. 달릴 때 엔돌핀과 도파민이 생겨나면서 기분이 상쾌해지고 우울감이 낮아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스트레스 받는 일이나 잡생각이 순간 없어지고 정신이 맑아집니다.
둘째, 가성비입니다. 짧은 시간에도 운동량이 많고 비용은 다른 운동에 비해 굉장히 적게 듭니다. 물론 어느정도 경지에 오르면 운동화와 고글, 모자에다 이어폰 같은 액세서리에 투자하는 러너들도 있지만 나는 반대 입장입니다. 뛸 때는 가능한 몸을 가볍게 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셋째,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시간입니다. 평소엔 무심코 지나쳤던 공간이 달리면서 보면 다르게 보입니다. 계절에 따라 바뀌는 나뭇잎과 하늘, 강물이 보이고 관심도 없던 도로가 아주 야트막하게 경사진 게 신경 쓰입니다. 때로는 낯선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넷째, 무엇보다 혼자서도 가능하다는 건 정말 큰 장점입니다. 팬츠에 셔츠, 러닝화만 있으면 단출하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동료와 시간을 맞추거나 장소를 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뛸 수 있는 접근성이 높다는 점은 어떤 스포츠도 따라올 수 없는 장점입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무더위가 가시고 불과 며칠 사이에 갑자기 선선해지면서 밖에서 뛰기 좋은 계절입니다. 요즘은 GPS가 달린 스마트워치에 연동되는 디지털 장비를 이용해 달리기 습관과 기록들을 데이터로 분석하면 또다른 성취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과 함께 달리는 게 요즘 트렌드라는데 혹시 같이 뛰실 분 계시면 연락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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