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철학자, 여성운동가로도 활동한 프랑스의 지성 시몬 드 보부아르는 62세 때인 1970년에 《노년》을 썼습니다. 노인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을 지적하면서 노인문제가 곧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는 걸 이미 50년 전에 통찰했습니다.
그는 ‘노인의 지위’는 노인 스스로가 취득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노인들의 운명은 사회집단의 필요와 이해관계에 따라 규정돼 왔습니다. 우리 사회도 고려장이 있던 시대가 있었는가 하면 죽기 전까지 공경 받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그러면 현대사회에서 노인의 지위는 어떤가요. 보부아르는 ‘팽창과 풍요의 신화 뒤에 몸을 숨긴 소비사회는 노인을 천민계급으로 취급한다’고 썼습니다. 단적으로 젊은이들의 눈총을 받으며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매는 노인이나 요즘 요양원의 세태를 보면 ‘늙는 것은 곧 천민이 되는 것’이라는 말이 실감납니다.
실제로 우리 사회는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을 각각의 특징을 지닌 연령계층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20대와 30대 40대는 모든 면에서 확실한 경계를 갖는다고 여깁니다. 패션, 소비성향, 정신, 경험이 모두 다르다고 규정하고 시장을 세분하고 마케팅도 다르게 합니다. 반면 60세를 넘어서면 그저 노인으로 취급합니다, 70이든 80이든 100살이든.
젊은이들이 노인을 보는 눈도 이율배반적입니다. 자신들은 감정과 욕망을 쉴 새 없이 표출하면서 노인들이 그런 낌새를 내비치면 불쾌하게 쳐다봅니다. 자신들은 개방적이면서 유독 노인에게는 도덕을 요구합니다. 젊은이들의 마음에 들려면 노인들은 모두 득도한 성자가 돼야 합니다. 화를 내면 안 되고 욕심을 부려도 안 됩니다. 젊은이들이 주인인 세상에서 그나마 남은 시간을 빈축과 멸시 속에 살지 않으려면요.
이런 점에서 보부아르가 제기한 문제는 사실 좀 과격합니다. “한 인간이 인생의 마지막 15년이나 20년을 인수를 거절당한 불량품으로 살아야 한다는 건 문명의 실패를 보여주는 증거다”
노년을 슬기롭게, 가치 있게,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광고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희망고문’에 가깝습니다. 노인의 역할을 노인 스스로가 아닌 사회와 타인이 결정하기 때문에 노인이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고령사회는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에 새로운 위기가 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인류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 지 궁금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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