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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법’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상속권 제한되는 기준과 절차는

김민혁 기자 | 입력 : 2025-12-09 11:17

사진=정진아 변호사
사진=정진아 변호사
[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어릴 적부터 사실상 모든 양육을 한쪽 부모가 도맡아 왔는데, 자녀가 세상을 떠나자 수십 년 연락 한 번 없던 다른 부모가 상속재산의 절반을 요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벌어진다. 이처럼 양육 의무를 사실상 방기한 부모가 상속까지 가져가는 현실에 대한 비판 여론을 반영해, 이른바 ‘구하라법’으로 불리는 민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고, 2026년 1월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다.

개정 민법의 핵심은 ‘상속권 상실 선고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거나, 자녀에게 학대 등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거나, 그 밖에 심히 부당한 대우를 한 직계존속(주로 부모)에 대해 가정법원이 상속권을 없애는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상속권 상실이 선고되면 해당 부모는 처음부터 상속인이 아니었던 것처럼 취급돼, 법정상속분·유류분 모두 주장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가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것’에 해당할까. 법 조문이 구체적인 예시를 열거하고 있지는 않지만, 장기간 양육비를 전혀 지급하지 않고 사실상 자녀를 방치한 경우, 생활이 가능한데도 연락·지원 없이 방임한 경우, 심각한 아동학대와 결합된 경우 등이 대표적인 논의 대상이다. 단순히 성격이 맞지 않아 떨어져 지냈다거나, 일시적으로 양육비가 늦어진 사정만으로 곧바로 상속권 상실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자녀와의 관계, 경제 능력, 실제 지원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보게 된다.

절차도 중요하다. 피상속인이 생전에 공정증서 유언으로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없애 달라”는 취지를 남겨 두면, 사망 후 유언집행자가 가정법원에 상속권 상실 선고를 청구한다. 유언이 없는 경우에는 다른 공동상속인이 청구할 수 있는데, 그 부모가 상속인이 되었음을 안 날부터 6개월 이내에 가정법원에 신청해야 한다. 법원은 상속권 상실을 청구하는 원인이 된 사유의 경위와 정도, 상속인과 피상속인의 관계, 상속재산의 규모와 형성 과정 및 그 밖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상속권 상실 여부를 판결로 정하게 된다.

이번 개정은 2026년 1월 1일 이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헌법재판소가 직계 존·비속 유류분 규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2024년 4월 25일 이후 상속이 개시되는 경우에도 소급 적용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이미 상속이 진행 중이거나, 장례를 치른 뒤 뒤늦게 양육 의무를 저버린 부모가 상속을 주장하는 상황이라면, 시점과 요건을 꼼꼼히 따져 상속권 상실 선고 신청 가능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구하라법의 시행과 더불어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즉,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은 부모는 자녀가 사망하였을 때 유족연금 등 국민연금에서 지급하는 각종 연금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지 않은 부모가 자녀의 사망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이익을 모두 차단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단순히 양육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만으로는 부족하고 법원에서 '상속권을 상실하였다'는 확정판결이 있어야 국민연금공단이 연금 지급을 거절할 수 있게 된다.

정진아 변호사는 “구하라법은 ‘나를 버린 부모에게 한 푼도 주기 싫다’는 감정만으로 상속을 끊어버리는 장치가 아니라, 장기간 양육 의무를 방기하거나 학대를 저지른 경우에 한해 상속 구조를 바로잡는 제도”라며 “자녀 입장에서는 생전에 유언과 재산구조를 어떻게 정리해 둘지, 유족 입장에서는 어떤 자료를 모아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지 초기부터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결국 양육과 책임을 외면한 대가를 상속에서도 분명히 묻겠다는 방향이 법에 반영된 만큼, 상속 설계 단계에서 이 제도를 함께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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