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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청첩장 계좌번호

입력 : 2025-12-12 08:21

자료 계좌번호는 가상 번호임
자료 계좌번호는 가상 번호임
얼마 전 카톡으로 청첩장을 하나 받았습니다. 보낸 사람은 기꺼운 마음으로 경조사를 챙기기도, 그렇다고 모른 척하기도 애매한 사이입니다. 예전 같으면 종이카드로 청첩장이 왔을 테지만 지금은 클릭 몇 번만으로 쉽게 보낼 수 있습니다. 보낸 사람 입장에선 보내도 괜찮은 사이인지 고민했을 수도 있지만 받은 사람은 갈등에 빠지게 됩니다.

솔직히 더 적응이 안 되는 건 청첩장이나 부고장에 적힌 경조금 받는 은행계좌입니다. 모바일로 받은 청첩장에는 ‘마음 전하실 곳’이라는 이름으로 신랑 신부 이름과 양가 혼주 등 각자의 명의로 받을 수 있는 계좌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카카오톡 송금, 카드결제, QR코드까지 있는 경우도 봤습니다. 언제부턴가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고 보내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습니다.
과거 집안에 경조사나 큰일이 생겼을 때 음식을 나누며 품앗이하던 상부상조 정신은 돈을 주고받는 부조로 변질됐고 축하든 애도든 빠르고 편리하게 정산(?)하도록 진화했습니다. 내 눈에는 한국사회 특유의 효율과 영리함을 반영한 자본주의의 끝판왕처럼 보입니다.

물론 나와 달리 발품을 들여 직접 찾아가서 축하나 애도를 못해 서운하지만 마음만이라도 전달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친절한 수단으로 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계좌번호가 적혀 있는 청첩장이나 부고를 받을 때마다 세금고지서나 무슨 청구서를 받는 기분이어서 솔직히 기분이 개운하지 않습니다.

장점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직접 가거나 봉투를 챙길 필요도 없고 받아야 할 당사자에게 정확하게 전달되는 것도 마음이 놓입니다. 그래도 삭막하게 느껴지고 기분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다들 돈 돈 하는 세상이니까 시대 변화의 트렌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알기론 경조사 때 우리처럼 노골적으로 돈을 개입시키는 나라는 없는 것 같습니다. 결혼하는 커플에게 생활용품을 선물하고 장례 때 추모카드를 전하거나 고인의 유언에 따라 관련된 단체에 기부하는 문화는 봤습니다. 아시아 일부 국가에서 현금을 주는 문화가 있지만 특별한 사이에 제법 큰돈을 보태는 식이지 다수에게 계좌번호를 뿌리는 일은 우리가 유일한 듯싶습니다.

물론 외국의 문화가 좋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의 문화가 있고 돈을 주고받는 건 우리의 고유한 관습으로 보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어쨌든 돈을 주고받는 거래로 변질된 결혼, 장례문화를 보면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현금, 그것도 온라인으로 돈을 주고받으며 이어가는 관계가 건강한 관계인가 싶기도 하고요.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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