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회사 다닐 때 ‘엘리베이터 스피치’라는 말이 유행한 적 있었습니다. 상사에게 중요한 보고를 하거나 결재를 받을 때 엘리베이터를 함께 타고 가면서 목표 층에 도착하기 전까지 상사가 의사결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쉬운 표현을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속도와 효율, 애자일(Agile)이 미덕인 기업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1~2분 정도에 내 생각을 정리, 요약해서 핵심만 전달하려면 엄청난 준비가 필요합니다. 사안에 따라서는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진짜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생각을 충분히 교환하려면 1분보다 한 시간, 한 시간보다 두 시간, 나아가 며칠에 걸쳐 대화하고 곱씹어 보는 게 당연히 좋습니다. 어떤 경우엔 질문하는 데도, 답하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사안도 있습니다.
그러나 보통의 경우엔 오랜 세월에 걸쳐 지층이 퇴적하는 것처럼 대화가 조금씩 쌓이고 서로 공유하는 생각이 넓어지고 깊어지다 보면 예상치 못한 어느 순간에 본질에 가까워지는 법입니다. 진짜 중요하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옵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인공지능(AI)은 디지털화된 것은 학습하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채우는 긴 대화를 배우고 학습하지는 않습니다. 결국 AI가 학습해서 의미 있는 데이터로 저장하는 것은 세대를 건너 인류가 공유하는 엄청난 양의 정보 중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겁니다. 가족과 밥 먹고 친구와 산책하며 나누는 일상 속 대화를 AI는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삶 전체에서 경험하고 대화하면서 몸으로 느끼며 진화하는 인간을 데이터화된 기록만 저장하는 AI는 알 수가 없습니다. 여기서 AI의 한계가 보입니다. 나는 모르지만 이미 알려진 사실을 빨리 배울 필요가 있을 때는 유용하지만 진짜로 새로운 종류의 답을 찾는 질문에는 큰 도움이 안 됩니다. 그렇다면 AI와 인간이 잘할 수 있는 영역이 다를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유롭고 좋기만 할 때는 그 사람의 진가를 알 수 없습니다. 위기가 닥쳤을 때 그 사람의 대응방식을 통해 비로소 성격이나 기질이라고 할 만한 실체가 드러납니다. AI는 몰라도, 사람은 대화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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