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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한 배우에게 바치는 추도사

입력 : 2026-02-24 08:17

[신형범의 千글자]...한 배우에게 바치는 추도사
한 동안 잊고 지내던 단어가 있습니다. ‘착하다’. 내가 착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어쩌면 나만 그런지도 모릅니다. ‘착하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 건 지난 달 운명을 달리한 배우 안성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늘 글은 우리 시대의 배우 안성기에 대한 뒤늦은 헌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은 사람이 죽으면 이런저런 평가가 엇갈리기 마련인데 안성기의 죽음 앞에서는 드물게 사람들의 애도가 한 방향으로 모였습니다. 논쟁도 분란도 없었습니다. 평생 대중의 관심과 시선에 노출돼 있었지만 그에게 남은 건 스캔들이나 구설수가 아니라 평판과 태도였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착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착하다는 건 뭘까요. 사전적으로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인데 단어가 갖고 있는 뜻의 본질과 달리 일상에선 약간 저평가돼 있는 말 같습니다. 어수룩하고 만만해보인다, 존재감 없고 순종적이다, 자기 것도 챙기지 못하고 경쟁에서 밀리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착함은 성격보다는 태도에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굳이 외면해도 되는 순간에도 모른 척하지 않고, 자기에게 유리한 쪽이 아니라 옳은 편에 서고, 무난한 침묵 대신 불편한 행동을 선택하는 그런 태도 말입니다.

안성기는 성실했고 열정적이었으며 겸손하고 다른 사람을 배려했습니다. 물러날 때를 알았고 역할이 작아져도 자기 자리를 끝까지 지켰습니다. 그가 떠난 자리가 크게 느껴지고 안타까운 이유는 단지 그가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스타여서가 아닙니다. 그 자리를 채울 사람이 좀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결식 날, 그의 아들이 오래 전 받은 편지를 꺼내 읽었습니다. “겸손해라, 정직해라, 남을 사랑해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고 끝을 이렇게 맺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참으로 바꿀 수 없이 필요한 것은 바로 ‘착한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라.” 어린 아들에게 보내는 가르침이자 세상의 남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메시지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안성기를 존경하는 건 그가 이룬 성취나 명성 때문이 아닙니다. 상을 많이 받고 이력이 화려한 스타여서도 아닙니다. 나이로든 지위로든 충분히 대접받을 만했지만 그는 원치 않았고 누구에게나 겸손했습니다.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자기 일을 사랑했고 따로 후배들을 가르치지 않아도 현장에서 보여준 태도와 일화들은 귀감이 되었습니다.

배우로만 본다면 안성기보다 더 좋아하는 스타 연기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헌사를 바치는 이유는 안성기처럼 본받을 만한 어른이 되고 싶어서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품격을 지키면서 자기 일의 본질에 진심을 다하는 것, 그게 아무리 하찮고 작은 일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도 ‘착한 어른’의 조건에 포함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 세상에 겸손하면서 끝까지 자기 자리를 지켰던 사람의 뒷모습을 기억하는 것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어른 노릇에 길잡이가 될 것 같아서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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