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얘기입니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레시피에 있는 재료를 크기와 무게, 용량까지 정확하게 지킵니다. 평소 성격도 ‘적당히’ 넘어가는 걸 싫어합니다. 그래서 요리할 때도 ‘한꼬집’ ‘적당량’ 같은 표현은 질색합니다. 모든 재료를 저울에 올려 오차 없이 비율을 맞추고 파를 썰 때도 정해준 길이 대로 자릅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만든 음식이 놀라울 정도로 맛은 별로입니다.
이 얘기를 들은 한 쉐프가 말합니다. “같은 재료라도 날씨에 따라 상태가 달라요. 계절에 따라서도 다르고 습도와 온도에 따라 질감이 바뀝니다. 음식 맛에 영향을 주는 건 재료만이 아닙니다. 식탁에 앉은 사람의 상태도 영향을 미칩니다. 기운이 빠지고 축 처진 날에는 짠맛이 훨씬 선명하게 다가오죠. 땀을 많이 흘린 뒤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몸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지요. 이 때는 국물의 간을 약간만 올려도 맛이 달라집니다. 피로나 수면 부족도 후각과 미각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후각이 무뎌지면 짠맛과 쓴맛에 더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쉐프들 사이에선 ‘단순한 요리가 더 어렵다’는 말이 공감을 얻으며 회자됩니다. 예를 들어 일식의 경우 초밥이나 계란찜, 프랑스 요리 중엔 수플레 같은 음식이 대표적입니다. 주 재료인 달걀과 크림, 메이플시럽과 식초 같은 부재료가 전부인데 조리법은 ‘약불로 서서히 익힌다’가 전부입니다. 그래서 고급 요리 중에는 생각보다 단순한 것이 많습니다.
달걀과 버터, 소금이 전부인 오믈렛만 봐도 그렇습니다.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막상 해보면 쉽지 않습니다. 불 조절을 조금만 잘못해도, 타이밍을 놓쳐도 모양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한식 요리사들이 ‘밥 잘 짓는 사람이 진짜 요리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단순한 요리가 사실 제일 어렵습니다.
재료가 많고 과정이 복잡할수록 맛의 균형을 맞추는 건 생각보다 어렵지 않습니다. 재료와 재료들 사이에 조합과 빈 공간을 메울 수 있는 방법이 쉐프라면 자기만의 노하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저런 방법을 더하다 보면 결국 처음 의도했던 맛이 희미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다양한 재료들이 그 빈틈을 채워주기 때문에 기술(?)을 부리기엔 더 낫다는 겁니다.
그래서 요리는 숫자나 데이터가 아니라 감으로 하는 것이라는 데 많은 쉐프들이 동의합니다. 레시피는 출발점일 뿐 요리를 완성하는 건 그날의 감각과 컨디션이 결정한다는 것이지요. 어찌 보면 요리의 본질은 융통성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니다. 맛을 완성하는 데는 재료를 다루는 유연함,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균형감각, 먹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어우러져야 완성됩니다.
원칙을 어디까지 지키고 어떤 부분은 바꿔도 되는지를 아는 것, 좋은 요리사는 그 경계와 여유를 명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생각해 보니 말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말이 많을수록 생각은 흐려지고 진심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일수록 어렵고 복잡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좋은 요리와 좋은 말은 생각보다 닮은 데가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