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이종균 기자] 부모를 학대하거나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저버린 자녀의 상속권을 제한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올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개정 민법은 직계존속뿐 아니라 직계비속·배우자 등 모든 상속인을 상속권 상실 선고 대상에 포함했다. 상속인이 중대한 범죄행위나 부양 의무 위반 등 패륜 행위를 한 경우 가정법원이 상속권 상실을 선고할 수 있다. 상속권이 사라지면 유류분권도 함께 인정되지 않는다.
법도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는 20일 "종전에는 자녀가 부모를 학대하거나 오랜 기간 부양을 외면해도 살인·살인미수 같은 제한된 사유가 아니면 상속결격을 다투기 어려웠다"며 "개정 민법은 패륜 행위를 상속 단계에서 직접 판단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다"고 말했다.
엄정숙 변호사/법도종합법률사무소
어머니가 생전 자녀로부터 폭언·폭력에 시달렸고 다른 자녀의 보살핌만 받다 숨진 경우 공동상속인은 가정법원에 가해 자녀의 상속권 상실을 청구할 수 있다. 피상속인이 유언으로 상속권 상실 의사를 남긴 뒤 유언집행자가 절차를 진행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이번 개정의 배경에는 2024년 4월25일 헌법재판소 결정이 있다. 헌재는 유류분 상실 사유가 없는 민법 조항 등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시행된 민법 제1004조의2는 부모에 한정됐지만, 이번 개정으로 적용 범위가 모든 상속인으로 넓어졌다. 부칙에 따라 헌재 결정일 이후 상속이 시작된 사건에도 적용된다.
다만 상속권 상실은 자동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청구인은 의료기록, 진단서, 가정폭력 신고 기록, 생활비·간병비 부담 자료, 가족·이웃·간병인 진술서 등을 통해 학대나 부양 의무 위반을 입증해야 한다.
엄 변호사는 "상속권 상실 선고는 가정법원이 구체적 사정을 인정해야 가능하다"며 "사망 전 단계부터 증거를 모으고 필요하면 유언으로 의사를 명확히 남기는 준비가 중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