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이종균 기자] 전세로 거주 중인 주택이 매매되면 보증금 반환 책임은 원칙적으로 새 집주인에게 넘어간다. 다만 임차인이 임대인 변경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양도 사실을 안 뒤 상당한 기간 안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전세를 낀 주택 매매가 이어지면서 계약 기간 중 집주인이 바뀌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임대차계약서에 적힌 종전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받아야 하는지, 등기부상 새 소유자에게 청구해야 하는지 헷갈릴 수 있다. 법률상 핵심 기준은 대항력이다. 임차인이 주택을 점유하고 전입신고까지 마쳤다면 새 소유자에게 임대차 관계를 주장할 수 있다.
법도종합법률사무소 엄정숙 변호사는 4일 "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은 임차주택의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으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며 "임차인이 점유와 전입신고로 대항력을 갖췄다면 소유자가 바뀌어도 새 집주인이 보증금 반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말했다. 엄 변호사는 "이 경우 종전 임대인은 원칙적으로 보증금 반환 채무에서 벗어나고, 임차인은 새 집주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청구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엄정숙 변호사/법도종합법률사무소
대항력은 임차인이 실제로 주택을 점유하고 주민등록 전입신고를 마치면 다음 날부터 생긴다. 확정일자는 별도 문제다. 확정일자를 받으면 다른 채권자보다 보증금을 먼저 변제받을 수 있는 우선변제권을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새 소유자에게 임대차를 주장하는 기본 요건은 점유와 전입신고다.
임차인이 반드시 새 집주인만 상대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새 소유자의 자금 사정이 불안하거나 주택 매수 과정에서 과도한 대출이 확인되면 보증금 회수 위험이 커질 수 있다. 대법원은 대항요건을 갖춘 임대주택이 양도된 경우에도 임차인이 임대인 지위 승계를 원하지 않으면 양도 사실을 안 때부터 상당한 기간 안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고 본다. 이의를 제기하면 임차인은 승계된 임대차관계에서 벗어나 종전 임대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
실제 전세 거주자 D씨는 등기부를 확인하다가 집주인이 바뀐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종전 집주인은 "보증금은 새 주인이 책임진다"고 했지만, D씨는 새 소유자가 주택을 매수하면서 큰 대출을 일으킨 정황을 확인했다. D씨는 전입신고와 점유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새 소유자에게 보증금을 청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회수 가능성이 불안하다고 보고 양도 사실을 안 뒤 곧바로 이의를 제기했다. 이후 종전 집주인을 상대로 보증금 반환을 요구하는 방향을 택했다.
문제는 시점이다. 이의 제기는 언제든 할 수 있는 절차가 아니다. 양도 사실을 안 뒤 상당한 기간 안에 해야 한다. 임차인이 집주인 변경 사실을 알고도 별다른 의사 표시 없이 지내면 새 집주인의 임대인 지위 승계를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등기부 확인, 매매 통보 문자, 새 집주인과의 연락 기록 등은 분쟁이 생겼을 때 중요한 판단 자료가 될 수 있다.
대항력을 잃은 경우에는 상황이 더 복잡해진다. 전입신고를 미뤘거나 다른 곳으로 주소를 옮겼다면 새 소유자에게 임대차를 주장하기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보증금 반환 책임이 이미 새 집주인에게 넘어간 사정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종전 임대인만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시간과 비용을 다시 들일 수 있다. 청구 상대를 처음부터 잘못 잡으면 보증금 회수도 늦어진다.
엄 변호사는 "집주인이 바뀐 사실을 알게 되면 먼저 전입신고와 점유가 유지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며 "새 집주인의 등기 상황과 자력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승계를 받아들일지, 종전 임대인에게 청구할지 빠르게 판단해야 보증금 회수 위험을 줄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