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메뉴

HOME  >  사회

“파랗던 입술에 다시 붉은빛”…20년 이어온 인천의 생명외교, 175명 아이에게 새 삶 선물

송인호 기자 | 입력 : 2026-07-28 10:20

시, 아시아권 교류도시 의료지원사업 20주년…현지 진료 6792명·초청 치료 175명 성과
박찬대, “한 아이 생명 살리는 일은 한 나라의 미래를 살리는 일…사람중심 도시외교 확대”

악졸의 엄마 제엔꿀씨(44세). /인천시
악졸의 엄마 제엔꿀씨(44세). /인천시
인천=비욘드포스트 송인호 기자 "믿기 어려웠던 기적, 한국에서 시작됐다", "비용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말을 처음에는 믿지 못했어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 사는 여섯 살 악졸(Akzhol)의 어머니 제엔꿀 씨는 지난해 같은 사업으로 아이를 치료받게 한 가족에게 여러 차례 사실을 확인한 뒤에야 한국행을 결심했다.
악졸은 여섯 남매 가운데 막내이자 유일하게 선천성 심실중격결손과 폐 질환을 안고 태어난 아이였다. 수술이 시급했지만 어린 나이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인천시의 의료지원사업을 통해 한국에서 수술을 받은 뒤 아이는 건강을 되찾았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으며, 힘들어 보채는 일도 크게 줄었다.

제엔꿀 씨는 "신이 우리 아이를 선택한 것 같았다"며 "아이가 앞으로 수영선수가 될 만큼 건강하게 자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감사의 말을 전해 달라는 질문에는 끝내 말을 잇지 못한 채 두 손을 모으고 눈물을 흘렸다.
시가 20년 동안 이어온 의료지원사업이 한 아이와 한 가족의 삶을 바꾸고 있다.

◇20년간 이어진 생명 살리기…175명의 아이가 새 삶 얻어

시는 2007년부터 아시아권 교류도시 의료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아시아권 교류도시 의료지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올해는 사업 시행 20주년을 맞았다.

이 사업은 의료진이 직접 교류도시를 찾아 환자를 진료하고, 국내 치료가 필요한 중증 환자를 인천으로 초청해 수술과 치료를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시는 환아와 보호자의 왕복 항공료와 국내 교통비, 현지 진료 활동을 지원하고, 길병원 등 의료기관은 수술과 입원, 치료비를 부담한다. 여기에 밀알심장재단과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등 민간단체가 대상자 발굴과 현지 지원을 맡으며 민관 협력체계를 완성하고 있다.

지난 20년 동안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우즈베키스탄, 몽골, 키르기스스탄 등 아시아 교류도시 환아 175명이 인천에서 새 생명을 얻었다. 또 의료진이 직접 현지를 찾아 진료한 환자도 모두 6천792명에 달한다.

대부분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는 어린이들이다. 적절한 시기에 수술하면 건강한 삶을 되찾을 수 있지만 의료 인프라 부족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치료 기회를 놓치는 아이들이다.
리낫이 엄마와 함께 밀알 재단으로부터 선물 받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인천시
리낫이 엄마와 함께 밀알 재단으로부터 선물 받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다./인천시
◇파란 입술에서 건강한 웃음까지…아이들의 기적 같은 변화

올해 첫 의료지원 대상지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였다. 가천대 길병원 의료진은 지난 5월 현지를 방문해 심장질환 환아 55명을 진료했고, 질환의 중증도와 회복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최종 4명을 초청 치료 대상자로 선정했다. 환아와 보호자, 현지 인솔자 등 9명은 지난 9일 인천에 입국해 길병원에서 수술과 치료를 받았다.

두 살 리낫(Rinat) 역시 그 가운데 한 명이다. 팔로사징후를 앓던 리낫은 산소 부족으로 손가락과 입술이 파랗게 변하는 청색증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은 뒤 아이의 파랗던 입술에는 다시 건강한 붉은빛이 돌기 시작했다. 어머니 미르굴 씨는 "아이에게 새로운 심장과 새로운 기회를 준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 훗날 통역사가 되는 꿈을 이루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는 지난 27일 길병원에서 완치 행사를 열어 아이들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고, 이들은 28일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의 품이 있는 고국으로 돌아갔다.
/인천시
/인천시
◇의료와 행정, 민간이 함께 만든 '사람 중심 도시외교'

이 사업이 2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관 협력 시스템이 있다. 시는 교류도시와의 협력 및 행정·재정 지원을 담당하고, 길병원 등 의료기관은 세계적 수준의 의료기술과 전문 의료진을 제공한다.

밀알심장재단과 새생명찾아주기운동본부 등 민간단체는 현지 환자 발굴과 후원, 입출국 지원을 맡아 사업의 든든한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 단순한 의료봉사나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치료부터 회복, 귀국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이다.

이번 수술을 담당한 최창휴 가천대 길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교수는 "국내 체류 기간이 길지 않은 만큼 수술 가능성과 회복 과정까지 종합적으로 검토해 초청 대상자를 선정한다"며 "과거 이 사업으로 치료받은 아이가 성인이 돼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초청치료 완치행사가 27일 길병원 병동 병실에서 개최됐다./인천시
초청치료 완치행사가 27일 길병원 병동 병실에서 개최됐다./인천시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한 나라의 미래를 살리는 일"

20년간 이어진 의료지원사업은 단순히 175명의 생명을 살린 데 그치지 않았다. 인천과 아시아 교류도시 간 신뢰를 쌓고 사람을 중심으로 한 지속 가능한 지방외교 모델을 구축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의료기술을 매개로 국경을 넘어 생명을 살리고 도시 간 우정을 이어가는 '사람 중심 도시외교'가 인천의 새로운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박찬대 인천시장은 "지난 20년간 이어온 의료지원사업은 인도적 지원을 넘어 국경을 초월한 생명의 가치를 나누는 사람 중심 도시외교의 결실"이라며 "한 아이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곧 한 나라의 미래를 살리고 굳건한 연대의 뿌리를 내리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인천시는 앞으로도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 역량과 민관 협력 체계를 바탕으로 의료취약계층 지원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며 "국경을 넘어 나눔의 가치를 실천하는 국제도시로서 책임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175명의 아이들이 되찾은 건강한 심장과 웃음은 단순한 의료 성과를 넘어 인천이 20년 동안 쌓아온 신뢰와 연대의 결실이다. 생명을 살리는 따뜻한 손길은 이제 도시와 도시를 잇는 가장 강한 외교의 언어가 되고 있으며 인천은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송인호 기자 sih31@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사회 리스트 바로가기

인기 기사

최신 기사

대학뉴스

글로벌마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