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지금처럼 러닝 열풍이 불기 전에 나는 마라톤을 그만두었습니다. 20년 넘게 달리며 봄과 가을에 정해 놓고 참가하던 대회도 나가지 않게 됐습니다. 내가 한창 마라톤에 빠져 있던 시기에 일 년 동안 전국에서 열리는 마라톤대회가 약 300개였습니다. 아마 지금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입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게 이른 봄 서울시내에서 출발하는 동아마라톤과 가을에 춘천에서 열리는 마라톤입니다. 둘 다 거대 언론사에서 개최하는 유서 깊은 대회로 특히 모레 열리는 춘천 대회(러너들은 보통 ‘춘마’라고 부릅니다)는 가을 단풍을 배경으로 의암호와 북한강변의 경치가 워낙 뛰어나 마라토너들 사이에선 누구나 한번쯤 나가보고 싶은 대회입니다.
달리기 사랑으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기록이나 순위가 아니라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 집중한다고 썼습니다. 이기거나 지는 상대가 있는 게 아니라 어제의 나보다 조금 나아졌는지, 자기 안의 나태함과 타협하지 않고 성실하게 싸웠는지가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보면 마라톤은 마음먹기에 따라 전혀 다른 스포츠가 돼버립니다. 출발선을 떠나면 42.195km가 남습니다. 풀코스 대회에 참가하기 전에 러너들은 보통 3~4개월 정도 훈련합니다. 한 달에 최소 150km 이상을 달립니다. 이건 정말 최소한입니다. 300km 이상 뛰는 러너도 많습니다. LSD(Long Slow Distance)라는 훈련이 있는데 긴 거리를 천천히 달리는 겁니다. 20~30km를 그렇게 달립니다. 그렇게 수백 킬로미터를 달려서 대회 출발선에 도착합니다. 그러니 남아 있는 거리는 고작 42.195km입니다.
우리나라는 봄과 가을에 중요한 대회가 열립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훈련은 겨울과 여름에 하게 됩니다. 뻔한 얘기지만 겨울은 춥고 여름은 덥습니다. 그렇게 춥거나 더울 때 수십 킬로미터를 달립니다. 혼자 뛰면 되지 왜 우르르 몰려서 달리냐고 눈을 허옇게 뜨는 사람도 있는데 힘드니까 서로 의지하려는 겁니다.
대부분의 러너는 두 번째, 세번째 풀코스 대회에 나가면 목표를 4시간 초반, 혹은 3시간 후반대로 잡습니다. 잘 뛰는 재능도 있으면 좋겠지만 진짜 필요한 재능은 매달 200km 정도를 3~4개월 동안 꾸준히 뛰는 성실함입니다. 당연히 주로에는 지름길이 없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면 남은 거리는 딱 그만큼만 줄어듭니다.
목표한 시간에 들어오기 위해선 속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합니다. 똑 같은 페이스로 처음부터 끝까지 달리는 것입니다. 각자 리듬이 있겠지만 속도를 늦췄다 당겼다 하는 건 좋은 전략이 못 됩니다. 결국 빨리 달리기 위해선 빨리 달리지 말아야 합니다. 오버페이스 하는 순간 목표는 멀어지고 어쩌면 완주 자체가 불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완주는 용감하게 앞으로 나아간 사람이 스스로에게 씌워주는 월계관 같은 겁니다. 하루키도 매일 글을 쓰고 달리는 이유는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지속하는 힘’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폭발적으로 일하고 오래 쉬는 방법 대신 매일 조금씩 꾸준히 달리고 글을 쓰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지루함을 참고 성실한 반복의 결과를 믿는 것입니다. ‘춘마’의 계절이 돌아오니까 옛날 생각이 나서 한번 끼적여 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