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는 몇백 년, 심지어 천 년 넘게 명맥을 이어온 료칸(여관), 주조장, 화과자, 공방, 건설회사 등 장수 기업들이 많습니다. 그 배경에는 가족 중심의 경영뿐 아니라 후계자 양성, 종업원과 거래처의 신뢰, 장인기술의 전승, 상호(商號, 브랜드)와 가문의 명예를 중시하는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때 빼놓을 수 없는 제도가 무코요시(婿養子), 즉 사위로 들어가면서 아내 쪽 가문의 양자가 되는 방식입니다. 자식이 없거나 있더라도 역량이 부족할 경우 친척이나 능력 있는 가까운 사람을 골라 양자로 들여 가업을 잇게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방법이 바로 딸의 남편, 즉 사위를 양자로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사카 상인들 사이에선 “아들은 고르지 못해도 사위는 고를 수 있다”는 말이 여전히 전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스즈키자동차의 스즈키 오사무는 창업자 가문에 사위로 들어가 회사를 키웠고 마쓰시다전공을 설립한 마쓰시다 고노스케 회장은 사위인 마사하루를 후계자로 삼아 2대 회장으로 취임시켰습니다. 호시료칸은 8세기 초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는 유서 깊은 온천여관인데 가문의 후손으로 양자가 46대에 걸쳐 사업을 이어온 것으로 유명합니다.
어제 뉴스에서 헬스케어 의료기기를 생산하는 국내 중견기업의 창업주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전문경영인을 성인 양자로 삼아 회사를 물려주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세라젬 설립자인 이환성 회장은 30대 외동딸이 있지만 경영에 관심이 없어 대를 이을 후계가 마땅히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일본 무코요시처럼 사위는 아니지만 세라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전략기획, 마케팅, 국내외 영업 등 20년 넘게 경력을 쌓아 2021년 세라젬 대표에 오른 이경수 대표를 양자로 입양하겠다고 제안하자 이경수 대표는 “말도 안 된다”며 이 회장을 피해 한 달 동안 도망다녔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의 부모도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안 된다”며 완강하게 반대했습니다.
그러자 이환성 회장은 “나를 부양하라는 게 아니다. 기존의 부자관계는 그대로 유지해라. 20년 넘게 회사의 성장을 같이 하면서 경영철학과 신뢰를 쌓았다. 오로지 회사만 생각하자”며 설득하자 이 대표의 부모와 이 대표가 받아들이면서 국내 최초의 ‘성인 입양 가업 승계’가 이루어지게 됐습니다.
이 회장이 이 대표를 후계자로 낙점한 이유는 그의 사업가 기질과 위험을 감수하는 실행력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기업 입장에서도 경영의 연속성을 확보하고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와 사업전략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중요한 것은 승계 이후 후계자가 경영능력을 입증하고 실질적 성과를 내면서 일본의 장수 기업들처럼 시장에서 오래 살아남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