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다녔던 회사 근처 영등포의 한 동네에서 찍었습니다. 그새 누가 걸었는지 큼지막한 현수막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네요. 상식적이지도 않고 이해할 수도 없는 비상계엄이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보기에 두 가지 중요한 이유 때문입니다.
첫째, 계엄을 계획한 자들의 머리가 나쁘고 무능했기 때문입니다. 어딘가 어설프고 치밀하지도 못했으며 오래 전부터 계획한 것 같긴 한데 실행은 즉흥적으로 결정한 것처럼 허술하기 짝이 없는 게 그 증거입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란을 획책한 자들은 쿠데타를 성공시킬 만큼 똑똑하지도, 수준도 안 되는 놈들이었습니다.
두 번째가 중요한데 MZ세대 군인들 덕분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그들은 담장을 뛰어넘는 국회의원들을 그냥 보고 있었고 보좌관들의 저항에 져줬습니다. 국회에 투입된 계엄군 중에는 특전사 소속 707특수임무단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대테러 부대이자 전시에는 참수작전을 수행하는 최정예 부대입니다. 어지간해선 민간인이 마주칠 일 없는 이 부대가 헬기를 이용해 국회에 진입했는데도 의원들은 담을 넘어 본회의장에 들어갔고 불과 두 시간 만에 계엄은 해제됐습니다.
어처구니없는 계엄이 정리된 후 책임 있는 자들의 뻔뻔한 변명과 거짓말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헬기에 오르기 직전에야 목적지가 국회라는 걸 알게 됐다는 707부대원의 얘기는 진심인 것 같았습니다. 국회에 도착한 그들은 느릿느릿 움직였고 일부러 안 뛰고 걸어 다녔다고 한 부대원은 전했습니다.
특전사 제1공수여단장 이상현 준장은 비상계엄이 선포된 날 밤 상관인 특전사령관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대치하는 사람들이 국회의원과 보좌관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부대를 뒤로 물리고 일부 병력을 차량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했다고 했습니다. 1980년 ‘서울의 봄’ 때 바로 ‘그 부대’라는 오명을 씻기 위해 그동안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정치의 도구로 이용된 것 같아 참담한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계엄 해제 후 한 청년 계엄군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라며 연신 고개를 숙이며 철수하는 영상은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순 없고 계엄은 수긍하기 어려웠다는 딜레마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난데없이 계엄군이 되라는 명령에 얼마나 황당하고 괴로웠겠습니까. 그들도 국민이고 똑같이 피해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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