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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동짓날 앞에

2024-12-20 08:19:09

[신형범의 千글자]...동짓날 앞에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세상이 잘 채워지지 않는다는 걸

단추를 채우는 일이

단추만의 일이 아니라는 걸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잘못 채운 첫 단추, 첫 결혼, 첫 실패

누구에겐가 잘못하고

절하는 밤

잘못 채운 단추가

잘못을 깨운다

그래, 그래 산다는 건

옷에 매달린 단추의 구멍 찾기 같은 것이야

단추를 채워 보니 알겠다

단추도 잘못 채워지기 쉽다는 걸

옷 한 벌 입기도 힘들다는 걸

천양희 시인의 《단추를 채우면서》라는 시입니다. 첫 단추든, 중간 단추든 하나라도 잘못 채우면 마지막에는 채울 단추가 없거나 아니면 단추 혼자 남게 됩니다. 올해가 끝나가는 지금, 마지막 단추 하나가 남은 기분입니다.

내일은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冬至)입니다. ‘동지’는 올해가 이제 다 끝나간다고, 그러니 서둘러 정리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습니다. 부랴부랴 생각해 봅니다. 이맘때면 나는 뭘 했던가. 정리할 건 정리하고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털어버릴 건 털어버리고 잊어야 할 것은 잊어버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렇게 남길 것과 버릴 것, 잊을 것과 정리할 것을 구분해야 할 때입니다.

12월은 매번 후련함 뿌듯함보다는 후회와 반성이,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미련과 자책이 훨씬 많았던 것 같습니다. 뭘 그렇게 크게 잘못했을까, 하면 딱 꼬집어 그럴 만한 건 또 없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더 잘살아야 했는데 더 잘하지 못했다는 미련이 마음을 채웁니다.

그런데 12월만 그런 게 아닙니다. 인생 자체가 그렇습니다. 잘살고 싶었고 하루하루 충실하고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잘사는 게 그렇게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다 삶의 단추 하나 제대로 채우는 것도 쉽지 않다고 고백하는 시인 덕분에 위안을 얻습니다. 인생의 단추 하나 혹시 잘못 채웠더라도 어떻게든 바로잡을 방법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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