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조동석 기자] 우리 사회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면서 치매와 경도인지장애 등 의사능력 저하를 경험하는 인구도 빠르게 급증하고 있다. 초고령사회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고령화는 우리 경제의 생산능력 저하 요인으로 지적된다. 더불어 소비와 투자에도 위험요소로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법률행위를 무효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에 인지능력 저하 고령층의 경제활동이 제한될 수 있다.
고령층과 거래하는 거래 상대방과 금융기관에도 원상복구나 손해배상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고령층의 자산이 적시에 처분되지 않고 동결되어 있으면 경제 전체에도 비효율로 작용한다.
자본시장연구원 정수민 연구위원의 ‘금융소외 고령층을 위한 지원의사결정제도’ 보고서에서 성년후견제도가 활성화되고 있지않은 것을 고려하여, 개인 간의 계약에 의한 지원의사결정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약 946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8% 이상이다. 중앙치매센터는 이 중 10.41%인 98만 4천여명 가량이 치매를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같은 연령대에 비해 기억력은 감퇴하였지만 일상생활을 수행하는데 지장은 없는 수준인 경도인지장애환자의 수는 이보다 많은 216만명 수준으로, 유병률은 22.81%로 추정한다.
보고서는 이런 상황에서 지원의사결정제도의 도입을 제안했다. 지원의사결정은 의사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지원자를 통해 정보를 제공하고 선택을 보조하도록 하는 개념이다.
경도인지장애환자나 초기 치매 환자와 같이 인지능력의 저하가 크지 않는 경우에는 약간의 보조만으로도 의사능력 저하를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또한 지원자의 조력으로 디지털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고, 정보 부족으로 인한 차별적 관행에서 오는 피해를 예방함으로써 금융소외 문제의 해결을 기대할 수 있다.
UN 장애인권리협약 이후 여러 나라가 지원 의사결정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미국과 캐나다는 지원의사결정 계약을 통해 법원 개입을 최소화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이스라엘과 스웨덴은 전문 지원자를 양성하고 법원이 지원자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성년후견제도가 활성화되고 있지않은 것을 고려하여, 개인 간의 계약에 의한 지원의사결정제도의 도입을 제안한다. 특히 고령층에 대해서는 계약 기간에 상한을 두고 갱신할 수 있도록 하여 의사능력 저하에 맞춘 지원을 제공하고, 지원자에 대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지원의 품질을 제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서는 분석한다.
보고서는 우리보다 앞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에서는 치매인구의 동결자산을 경기 침체의 위험요소로 지적한다. 2022년 기준 일본의 치매 고령자 자산은 2,420조원으로 추정된다. 일본 민법 또한 의사능력이 없는 자의 법률행위는 무효로 보기 때문에 이들은 자산을 스스로 처분할 수 없으며, 법정 후견인이 아닌 가족들 또한 이들의 자산을 처분하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치매 인구의 자산 규모에 대해서는 추정된 자료가 없기 때문에 가구주의 연령별 자산규모를 대신하여 살펴보면, 65세 이상의 자산이 전체의 12.4%, 70세 이상은 10.7%, 75세 이상은 7.2%로 고령층의 자산이 전체 자산 중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하다.
우리나라는 성년후견제도를 통해 인지능력이 저하된 고령층을 대신하여 후견인에게 의사결정을 대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2013년 도입된 성년후견제도는 2022년까지 누적 이용수가 전 연령층을 통틀어 11만 건에 불과하다. 특히 사무처리 능력이 결여될 상황을 대비하여 재산관리 등의 사무를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위탁하는 임의후견은 2022년까지 누적 187건 접수되는 등 거의 이용되지 않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2010년 저축은행 사태, 2017년 ELS 사태 등을 거치며 고령 금융 소비자 보호 방안을 마련하였다. 고령투자자 기준은 2015년 기대수명 증가와 고령인구의 경제활동 증가에 따라 65세에서 70세로 변경되었으나, 2019년 DLF 불완전판매 사건을 거치며 다시 65세로 낮아지는 등 고령층에 대한 정책은 피해를 최소화 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고서는 지원의사결정제도의 도입은 금융기관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고령층이 금융투자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을 지원자와 함께 하면, 고령층을 대상으로 한 불완전판매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또한 금융기관에서 고령층과 지원자를 대상으로한 전문적인 금융교육을 제공하고 고령층의 자산관리에 유용한 신탁상품, 공동계좌 등을 안내하면 고령층과 금융기관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
news@beyondpost.co.kr
<저작권자 © 비욘드포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