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김신 기자] 일반 기업의 회생 절차에서는 인수자가 주식을 매입하고 지분을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방식의 M&A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의료법인은 주식이나 지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비영리법인이다. 이 때문에 의료법인의 회생 과정에서는 지분 인수를 통한 전통적인 방식의 인수합병(M&A)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재정난에 빠진 병원이 회생 절차를 밟으며 외부 투자자 유치를 통해 경영 정상화를 도모하려면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법무법인 대율의 안창현 대표 변호사는 “의료법인 회생에서 M&A는 ‘지분 인수’가 아닌, ‘이사회 구성권 확보’를 통한 구조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 변호사는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이사, 중소벤처기업공단 회생컨설턴트, 서울지방변호사회 개인회생파산특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며, 의료법인 회생·파산 사건 수백 건 이상을 수행한 도산법 전문 변호사다.
의료법인은 의료법상 비영리법인으로, 출자자의 권리 역시 이사회 구성에 국한된다. 다시 말해, 병원의 실질적 경영은 이사회를 통해 결정되며, 병원 대표 선임, 예산 편성 등 운영의 주요한 사안들이 모두 이사회를 통해 진행된다.
따라서 회생절차에서의 M&A는, 인수자가 회생계획안에 따라 기존 이사들의 사임을 유도하고, 자신이 추천하는 인사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렇게 구성된 새로운 이사회는 병원의 경영권을 사실상 행사하게 되며, 법인의 공공성과 비영리적 성격은 그대로 유지된다.
이러한 방식은 실제 회생 절차에서 의료기관 정상화의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보바스기념병원(사회복지법인 서울재활병원)'이 있다. 해당 병원은 2016년 재정 악화와 부채 문제로 회생절차에 들어갔으며, 당시 재단의 출연자 변경 없이 이사 전원이 사임하고 인수자가 추천한 인사로 이사회를 재구성함으로써 구조조정과 경영 정상화를 동시에 이뤘다.
회생계획안 설계 시 인수자는 병원의 운영자금과 일부 채무 변제를 위한 자금을 투입하며, 그 대가로 이사회 구성권을 확보한다. 여기에는 병원 시설 개선 자금, 리스료 상환 등도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법원의 인가를 받아야 하며, 이사회 변경 역시 의료법에 따른 적법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요한 점은, 의료법인의 이사회 구성 변경은 관할 주무관청의 허가 또는 보고 대상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사전 협의 없이 무리하게 운영권을 변경하는 경우, 행정적 승인이 거부되거나 의료기관 허가 취소 사유로 이어질 수 있다. 안 변호사는 이와 관련해 “이사회 선임 절차, 자금 투입 일정, 기존 이사의 사임 조건 등은 회생계획안에 구체적으로 명시되어야 하며, 채권단과 법원, 주무관청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설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수자는 병원을 통해 배당이나 수익을 가져갈 수 없기 때문에, 과도한 투자금 회수 구조는 의료법 위반 소지가 있다. 비영리법인의 공공성과 법적 성격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경영 정상화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회생 M&A는 더욱 정밀한 법률적 접근이 필요하다.
의료법인의 회생은 단순한 재무구조 개선을 넘어, 의료서비스의 지속성과 지역 의료체계의 유지를 전제로 한다. 회생 절차를 밟는 의료법인에게 있어 M&A는 경우에 따라 생존을 위한 유일한 출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의료법인의 특수성과 공공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서는 전통적 기업 M&A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며, 풍부한 실무 경험을 가진 전문가의 조력이 필수적이다.
법무법인 대율의 안창현 변호사는 “병원 회생에서의 인수 구조는 민감한 의료 행정과 직결되기 때문에, 단순한 채권 조정이나 투자 유치가 아니라 공공성과 법적 안정성을 모두 충족하는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며 “보바스기념병원 사례처럼 이사회 장악 방식의 M&A는 의료법인의 한계를 넘어 경영 정상화를 이끌 수 있는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