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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알아서 잘 해’는 더 이상 안 통해

입력 : 2025-06-26 08:01

[신형범의 千글자]...‘알아서 잘 해’는 더 이상 안 통해
우리는 어려서부터 ‘시키는 대로 해’라는 얘기를 듣고 자랐습니다. 그러다 보니 웃어른이나 상사가 시키는 일을 잘하는 게 미덕이고 곧 능력이었습니다. 여기서 조금 욕심을 부리면 시키는 일은 기본이고 상사가 말하지 않은 속마음을 읽고 그것까지 알아서 해오면 그의 앞길은 그야말로 탄탄대로입니다.

“알아서 해” “어떻게든 해 봐” 같은 괴상한 지시도 ‘어떻게든’ 해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아랫사람들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야 하고 상사의 심중을 해석하느라 고통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상사가 어떻게 시키는가 하는 것은 관심의 영역이 아닙니다. 그냥 ‘까라면 까’야 했으니까요.
심한 경우 이런 식입니다. “저기 그 뭐야, 그때 그거는 알아봤어?” “그거 좀 잘 하라고 했잖아, 어떻게 됐어?” 대명사가 많고 구체적이지 않은 모호한 단어를 사용하니까 지시 받는 사람은 지시 내용을 여러 번 생각하고 해석해야 합니다. 만약 지시한 내용을 알아듣지 못하면 잘못은 고스란히 아랫사람의 몫입니다.

더 큰 문제는 그걸 보고 배운 ‘아랫것’들이 올바르게, 제대로 지시할 줄 모르는 상사가 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누가 지시한 일을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속 편하다고 여깁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된 세상이 됐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때문입니다.

명확하게 지시할수록 AI는 정확한 답과 질 높은 결과물을 내놓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누구나 업무는 물론 이메일 답장, 보고서 요약, 외국어 번역 같은 일은 인공지능에 맡깁니다. 이때 간결하고 명확하게 핵심을 짚어 지시를 내려야 시행착오 없이 원하는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시가 곧 실력인 세상이 된 것이지요.
최근에는 ‘에이전트 보스’라는 개념도 생겨났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개의 ‘인공지능 비서(에이전트)’를 관리하고 협업한다는 뜻입니다. 막내 직원이라도 상사에게 지시 받은 일을 다시 시킬 수 있는 에이전트를 여럿 거느리기 때문에 ‘에이전트 보스’가 되는 것입니다. 직장인이라면 이제 누구라도 ‘에이전트 보스’로 일해야 합니다. 보스는 여러 개의 AI를 병렬로 활용해 혼자서 팀 단위의 일을 처리합니다. 유능한 보스가 되려면 에이전트간 연결과 설계, 문제해결능력, 전략수립능력 같은 ‘미래의 문해력’을 갖춰야 하는데 이 모든 것은 지시(프롬프트)로 이루어집니다.

이제는 시키는 대로 잘하는 능력만큼이나 잘 시키는 능력까지 갖춰야 합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심기를 살펴 마음 속 숨은 뜻을 알아채지 못하고 독심술을 쓰지도 못합니다. ‘알아서 잘 해’라는 식의 명령어는 인공지능에겐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혼란과 오해를 불러 일으켰던 이런 소통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결국 모호한 지시 대신 명확하게 소통해야 합니다. 누구나 알아듣기 쉽게 목표를 제시하고 과정과 조건을 설명할 수 있어야 진짜 능력 있는 보스가 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구체적이고 정확한 지시를 내리는 능력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학습과 훈련으로 얼마든지 기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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