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베른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영국과 독일에서 공부하고 독일 마그데부르크대학교와 베를린자유대학에서 철학교수를 지낸 파스칼 메르시어는 2004년 발표한 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습니다. 장편소설의 제목은 《리스본행 야간열차》.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는 소설을, 페터 비에리라는 본명으로는 철학서를 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버스인지 열차인지 알 수 없는 리스본에서 찍은 사진을 보고 떠오른 생각입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스위스 베른에서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 같은 고전어를 가리치는 교수입니다. 어느 날 출근길에 만난 포르투갈 여인을 구하고 그녀의 흔적을 따라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릅니다. 열차에서 우연히 본 책 《언어의 연금술사》의 작가 아마데우 프라두의 삶을 추적하면서 자신의 삶과 정체성에 대해 성찰하게 됩니다. 20세기 중반 포르투갈의 독재시대와 1974년 카네이션혁명을 배경으로 인간의 내면과 자유, 선택의 의미를 탐구하는 다소 난해한 장편소설입니다.
소설이 쓰여진 2004년 이전에는 베른(Bern, Swiss)에서 리스본(Lisbon, Portugal)까지 직통 야간열차가 있었으나 현재는 운행하지 않고 여러 번 환승을 해야 합니다. 특히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갈 때는 두 나라 모두 바퀴 폭이 1435mm의 표준궤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그보다 폭이 넓은(1668mm) 광궤여서 열차를 갈아타거나 바퀴 폭을 변경할 수 있는 궤도가변(Variable Gauge)시스템 열차를 이용해야 합니다.
세계 최초로 증기관차를 만든 영국은 로마시대 말 두 마리 엉덩이 넓이를 기준으로 1435mm의 열차궤도를 표준으로 정착시켰습니다. 산업혁명을 통해 유럽 대륙에 철도가 전파되면서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스위스 등 많은 국가들이 기술의 호환과 효율성을 위해 영국 표준궤를 채택했습니다. 현재 유럽의 주류 궤간입니다.
하지만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반도는 19세기 중반, 프랑스와의 전쟁 그리고 잠재적 침략에 대비해 열차가 국경을 넘지 못하도록 표준궤 대신 광궤를 채택했습니다. 군사적, 정치적 이유 때문이지요. 이와 비슷한 경우가 러시아인데 독일을 비롯한 유럽의 침략에 대비해 이베리아반도 국가와는 또 다른 광궤(1520mm)를 도입합니다. 이 궤도는 이후 소련의 세력권 즉, 핀란드, 발트3국, 중앙아시아 일부 국가들에도 적용됩니다.
만약 남.북한이 통일되면 표준궤를 사용하는 우리나라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해 유럽을 거쳐 이베리아반도까지 가려면 러시아를 지날 때 광궤, 유럽에선 다시 표준궤, 다시 스페인 광궤 등 열차를 몇 번씩 환승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르게 됩니다. 그래도 괜찮으니 한번 타 봤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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