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을 같이 하게 된 사람들과 프로젝트의 성공과 단합을 핑계 삼아 송년모임을 가졌습니다. 낯선 사람들과는 술자리를 잘 안 하는데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소주잔이 몇 순배 돌게 됐습니다. 내가 술 마시는 데 적극적이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지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물었습니다. “주량이 어떻게 되세요?”
나는 대답했습니다. “시속 소주 한 병입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예전처럼 단순히 ‘마실 수 있는 총량’ 대신 ‘한 시간 동안 마실 수 있는 주량’으로 커뮤니케이션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흉내낸 것이었습니다. 모인 사람들의 나이가 대부분 40대 후반에서 60대이니 알아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는 척하면서 설명했습니다. 늦게 취할 때까지 마시는 총량보다 짧은 시간에 효과적으로 취할 수 있는 속도를 즐기는 젊은이들의 술에 대한 인식에 공감하고 어른들보다 훨씬 합리적이라고 생각해서 나도 따라한 것이라고.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식으로 주량을 표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시성비’ 즉 시간 대비 성능비율은 MZ들의 일상 언어입니다. 빨리 듣고, 빨리 읽고, 빨리 보기가 기본입니다. 드라마와 영화는 결말 포함해서 20~30분 요약으로, 60분짜리 강의는 앞뒤 인사 빼고 1.5배속으로 들으면 40분 남짓이면 끝납니다. 책은 ‘핵심정리’로 논문은 인공지능(AI) 요약으로 해결합니다.
‘시속 몇 병’으로 표현되는 음주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어떻게 보면 극도의 효율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정해진 시간에 얼마나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는지를 따지는 능력주의와 짧은 시간에 목표를 달성하는 효율성 그리고 회식과 모임에서 주량을 강요하는 집단문화 대신 자신의 신체능력을 밝히고 그에 맞춰 마시는 개인주의의 확산에 따른 결과입니다.
실제로 ‘강요하지 않는 음주문화’는 과거 수직적 조직문화의 상징이던 술자리 회식문화가 빠르게 사라지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대신 다양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새로운 문화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회식=폭탄주, 폭음’ 공식은 없어지는 추세이고 ‘점심회식’ ‘문화회식’ 같은 활동이 자연스럽게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변화는 결국 효율성, 능력주의, 개인화라는 현대의 가치관이 음주라는 매개체를 통해 재정의된 사회.문화현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젊은 세대에게는 효율적인 시간 사용과 개인의 건강을 챙기는 동시에 각자의 취향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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