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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千글자]...서점에 오면 사람을 만난다

입력 : 2026-01-23 08:05

[신형범의 千글자]...서점에 오면 사람을 만난다
노트북 자판 버튼 네 개가 먹통이 됐습니다. 가로, 세로 각각 1cm짜리 조그만 버튼 몇 개 때문에 노트북을 새로 사는 건 아닌 것 같아 서비스센터에 자판을 교체하러 갔더니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다이소에서 무선 키보드를 샀습니다. 가격도 싸고 생각보다 편했습니다. 무엇보다 노트북 자판보다 터치감과 소리가 더 좋습니다. 이렇게 불구가 된 노트북으로 벌써 4~5년 동안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터 노트북으로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어쩌면 나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기억이 서서히 사라지는 병을 앓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간직한 기억 없이 현재만 사는 생명체가 과연 뭐가 있을까요. 고유명사가 잘 떠오르지 않고 분명히 아는 건데도 자꾸 가물가물해지는 건 치매 증상이라던데…
새해에 일본의 한 출판사가 신문에 광고를 냈습니다. 광고 카피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서점에 오면 사람과 만난다. … 1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거나 1만km 떨어져 살고 있는 사람이거나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을 하는 사람. …”

1909년에 설립한 일본의 대형 출판그룹 고단샤(講談社)가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 신년인사로 낸 이 구닥다리 감성의 광고는 소셜미디어로 퍼날라져 순식간에 국경을 넘어 나에게까지 닿았습니다. 일본에 살지도 않고 일본어도 모르는 나에게까지 말입니다. 이 광고를 인상 깊게 본 누군가가 한국어로 번역해 자기 소셜미디어에 올렸기 때문이겠지요.

이 광고를 보면서 새삼 글과 책에 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책은 사람이 만듭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정문 앞 표지석에도 이렇게 새겨져 있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교보문고 설립자인 故 신용호 회장의 어록이라는데 책과 사람 사이의 상호관계를 이보다 더 잘 설명하는 말이 있을까요.
내 생각에 책은 여전히 필요하고 앞으로도 계속 출판될 것입니다. 시대가 바뀐다고 없어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들 고개를 처박고 휴대폰 화면만 들여다본다 해도, 동영상과 디지털 이미지가 사람들의 인식을 통제한다 해도, 정보의 홍수가 사람들의 감각을 뒤덮는다 해도 종이책을 공들여 읽고, 밑줄을 긋고, 메모하고, 포스트잇을 붙이는 즐거움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고단샤 광고처럼 100년 전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도 자기보다 100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을 책으로 만났고, 비행기도 없던 시대의 사람들이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책으로 만났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확실히 책을 많이 읽는 소수(극소수)의 사람과 거의 책을 읽지 않는 다수(대다수)의 사람으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나는 AI시대에도 책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편에 서겠습니다. ^^*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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