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말로 글 쓰면서 띄어쓰기를 헷갈리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요. 문법을 완벽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 것입니다. 나는 띄어쓰기 규칙을 확인할 때마다 이런 건 전공자나 문법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직업적 곤조(?)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내 주장은 띄어쓰기 규칙을 좀 느슨하게 적용하자는 겁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띄어쓰기를 표준으로 하되 개념이나 의미 단위로 단어를 붙여 쓰는 걸 허용하자는 거지요. 그래서 띄어쓰기와 관련해 틀렸다고 지적하지 말고 모든 사람이 죄책감, 스트레스 없이 자유롭게 글을 쓰게 하자는 겁니다.
(2) 악필은 보통 못쓴 글씨보다 읽기 어려운 글씨를 뜻합니다. 최인호 작가도 악필로 유명했지만 자세히 보면 못쓴 글씨가 아닙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손글씨를 자기를 위해서만 쓰는 시대에는 못쓰고 읽기 쉬운 글씨보다 악필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 글씨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때그때 기분에 따라 글씨가 달라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컴퓨터로 쓰는 세상이 되지 않았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3) 한자교육을 더 해야 합니다. 과학적이고 소리글자인 한글과 의미 집약이 세계 최고인 한자의 결합은 편리하고 강력한 문자생활을 가능하게 합니다. 서양 사람들이 해석도 잘 안 되는 이상하게 쓴 문장을 볼 때마다 저것들이 한자를 몰라서 그런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지적인 활동일수록 한자의 중요성이 커지는데 이런 말하면 내 나이를 들먹이며 시대에 뒤떨어졌다고 합니다. 중요한 건 주장의 옳고 그름이지 나이가 아니지 않나요?
(4) 철학의 나라 독일에선 철학책이 나오면 독일학생들은 불어나 영어 번역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농담은 불어와 영어가 독어보다 더 논리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누구나 모국어는 감정적으로 읽지만 외국어는 논리적으로 읽는다는 뜻입니다. 한국인은 이런 성향이 훨씬 더 강합니다.
(5) 세상(모든 것)은 번역입니다. 외국어만 번역하는 게 아닙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 있고, 삶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듯이 언어가 있는 곳에 번역이 있습니다. 생각과 말 사이에는 크고작은 틈이 존재합니다. 생각을 말로 충분히 표현한다 해도 의심과 오해 없이 상대방에게 가 닿기란 쉽지 않습니다. 의사 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감입니다. 왜 이 단어를 썼는지, 왜 이런 식으로 단어를 배열했는지, 왜 문장을 이렇게 끝맺었는지 파악하지 못하면 번역은 이상해집니다.
(6) 무슨 일을 하든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운전도 그렇고 요리도 그렇고 글도 그렇습니다. 내 친구 하나는 글씨를 못씁니다. 마치 초등학생이 쓴 글씨 같은데 그런데도 글씨가 매우 고급스럽습니다. 육필을 쓸 일이 별로 없지만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글씨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 글씨는 옹졸하기 짝이 없고 어떤 누구는 잘쓴 건 아닌데 활달합니다. 글씨를 잘쓴다고 세상이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것도 문화의 한 귀퉁이 아니겠습니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