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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도 괜찮습니다, 성희롱과 차별을 예방하는 가장 작은 시작

김신 기자 | 입력 : 2026-06-22 16:34

사진=한국영화성평등센터 센터장(공인노무사 박정연)
사진=한국영화성평등센터 센터장(공인노무사 박정연)
[비욘드포스트 김신 기자] "너무 예민한 것 아닌가요?" 성희롱·성차별 사건을 상담하거나 조사하는 과정에서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성희롱이나 차별을 떠올리면 노골적인 성적 언동이나 명백한 차별행위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접하는 사건들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문제의 시작은 "별 뜻 없이 한 말", "칭찬이라고 생각했던 표현",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어져 온 농담"인 경우가 많다.

미국의 심리학자 데럴드 윙 수(Derald Wing Sue) 교수는 이러한 현상을 '마이크로어그레션(Microaggression)', 즉 '미세한 차별'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미국 대학에서 강의를 마친 뒤 종종 들었던 말이 있다. "교수님, 영어 정말 잘하시네요."
언뜻 칭찬처럼 들린다. 하지만 그 말 속에는 무의식적인 전제가 숨어 있다. "당신은 미국인처럼 보이지 않는데 생각보다 영어를 잘하는군요." 말한 사람에게는 칭찬이었지만, 듣는 사람에게는 자신이 이 사회의 온전한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메시지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악의가 있었느냐가 아니다. 실제 성희롱 사건에서도 행위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는 설명이다. 대부분 사실일 수도 있다. 다만 이렇듯 많은 문제는 악의보다 무지와 익숙함에서 비롯된다.

영화 현장 역시 예외는 아니다. "원래 영화판은 다 그래." "남자 스태프가 육아휴직을 간다고?" "그 역할은 남자가 하는 게 더 자연스럽지 않을까?" "여성 감독인데 현장 장악력이 있네.“
각각의 표현만 떼어 놓고 보면 대수롭지 않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반복적으로 자신이 특정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더구나 영화 현장은 다양한 사람들이 짧은 기간 동안 밀도 높게 협업하는 공간이다. 위계와 권한이 존재하고, 작품 완성을 위한 긴장감도 높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사소해 보이는 말과 행동은 우리의 예상보다 더 큰 영향을 남기기도 한다.

그래서 성희롱과 차별을 예방하는 일은 단순히 규정을 만드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현장을 이해하는 신고 절차와 조사 체계가 필요하다. 행위자에 대한 적절한 조치 역시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문제를 사후적으로 해결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서로의 불편함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감각을 키우는 일이다.

데럴드 윙 수 교수는 이를 위해 '미세한 중재(Micro-intervention)'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몰아세우기보다 스스로 생각해 볼 기회를 만드는 방식이다. "교수님, 영어 정말 잘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태어났습니다." "원래 어디 출신이세요?" "지구 출신입니다." 감정적·방어적 대응이 아닌 부드러운 대처다. 갈등을 키우지 않으면서도 상대방이 자신의 표현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성희롱과 차별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하지 않는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오래된 고정관념, 사소해 보이는 편견이 쌓이고 반복되면서 누군가를 배제하고 침묵하게 만든다. 반대로 건강한 조직문화 역시 거창한 선언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태도, 내가 사용한 표현이 어떻게 들릴 수 있을지 돌아보는 습관, 그리고 작은 불편함도 놓치지 않으려는 섬세함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이미 많은 변화를 만들어 왔다. 이제는 노골적인 차별을 넘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먼지 같은 차별'까지 살펴볼 때다. 조금 더 예민해져도 괜찮다. 어쩌면 더 안전하고 존중받는 영화 현장을 만드는 힘은 거창한 제도나 선언보다, 상대방의 불편함을 알아차리는 작은 섬세함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도움말 한국영화성평등센터 센터장(공인노무사 박정연)

비욘드포스트 김신 기자 bp_ks@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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