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은 스페인이 이번 월드컵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축구를 아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이런 큰 대회의 주요 경기는 챙겨 보는 편입니다. 축구팬이 아니더라도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는 다 압니다. 타고난 재능에다 성실한 노력과 겸손한 인간미까지 갖춘 그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별로 못 봤습니다. 나이를 생각하면 이번이 그의 마지막 월드컵일 텐데 준우승에 머물러 아쉽긴 합니다.
경기장에서 메시는 눈에 자주 띄지 않습니다. 이번 월드컵 예선부터 결승전까지 카메라는 계속 공을 쫓아다니는데 메시는 화면에 잘 안 잡힙니다. 하지만 골 장면이나 결정적인 찬스 때는 거의 항상 느닷없이 나타나 골을 넣거나 어시스트에 성공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메시는 열심히 뛰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번 대회 결승전을 뺀 7경기에서 모두 공격포인트(8골 4도움)를 올렸습니다. 특히 잉글랜드와의 준결승에서 메시가 전력질주한 거리는 60m 남짓입니다. 그렇지만 결정적인 어시스트 2개를 골로 연결시켜 역전승을 이끌었습니다. 이번 대회를 통틀어봐도 전력질주(시속 25km 이상) 거리는 90분 기준 63m에 불과합니다.
메시는 경기당 이동거리가 다른 선수들보다 확연히 적고 많이 걸어 다닙니다. 피지컬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메시는 그라운드에서 90분 평균 8.1km를 이동했습니다. 준결승에서 상대한 잉글랜드의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이 경기당 10.8km를 뛴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2.7km나 됩니다.
그런데도 메시는 득점 2위 등 공격지역에서 볼터치 횟수, 결정적인 찬스 창출 등 공격의 결정적인 부문에서 모두 Top3에 올랐습니다. 유유자적 걸어 다니다가 어느 순간 나타나 골을 넣는데 질주부터 득점 순간까지 단 3초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이처럼 메시는 평상시 게으름을 부리며 힘을 아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에너지를 폭발시킵니다. 그의 전력질주는 71%가 공격지역에서, 21%는 페널티 에어리어에서 이뤄집니다. 철저히 득점 기회 때만 달린다는 증거입니다.
빠른 템포와 압박이 대세인 현대 축구에서 메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축구를 풀어냅니다. 열심히 안 뛰는 것처럼 어슬렁거리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경기에 몰입합니다. 눈과 머릿속에 지도를 그려 놓고 수비진의 약점을 파악합니다. 메시는 인터뷰에서 “내가 걷는 건 동료와 수비수의 위치를 확인하고 흐름에서 일부러 빠져나와 수비수에서 멀어진 다음 팀이 공격할 때 빈틈을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천재 선수를 동료로 두려면 나머지 필드 플레이어 9명이 메시 몫까지 더 뛰어야 합니다. 그래도 메시는 선수들로부터 존경받기 때문에 동료들은 기꺼이 더 뜁니다. 메시 같은 천재는 많이 어슬렁거릴수록 경기장을 더 넓게 보고 결정적인 찬스를 더 많이 만들어냅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메시를 흉내내선 안 됩니다. 동료나 주변 사람들에게 욕 먹기 딱 좋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메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