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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범의 포토에세이]...형제의 나라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 입력 : 2026-07-27 08:09

[신형범의 포토에세이]...형제의 나라
우리나라의 월드컵 역사상 첫 경기 상대는 헝가리였습니다. 결과는 아는 대로 0대9로 대패. 축구의 경기당 평균 득점 수를 감안하면 역사에 남을 만큼 창피한 참혹한 패배입니다. 하지만 사정을 알고 보면 눈물겨운 얘기가 숨어 있습니다.

한국의 첫 월드컵은 1954년 스위스 대회. 당시 아시아 지역 티켓 한 장을 놓고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습니다. ‘홈앤드어웨이’로 서울과 도쿄에서 각각 한 경기씩 치러 최종 참가팀을 결정하는 방식인데 당시 반일 감정이 극심했던 이승만 대통령은 일본선수단이 대한민국 땅을 밟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결국 홈 경기를 포기하고 도쿄에서 두 경기를 모두 치렀는데 1차전을 5대1로 이겼습니다. 2차전은 2대2로 비겨 16개국이 참가하는 월드컵 본선에 한국이 참가하게 된 것입니다. 험난한 지역예선을 거친 한국 대표팀이 여러 공항을 경유하며 무려 46시간의 비행 끝에 스위스에 도착한 시간은 첫 경기 시작 10시간 전. 최상의 컨디션으로 붙어도 어려운 헝가리를 상대로 한 골도 못 넣고 9골이나 내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여기까지는 많이 알려진 얘기라 아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어서 벌어진 예선 2차전에서도 한국은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0대7로 패했는데 상대 국가가 바로 튀르키예입니다. 6.25전쟁 때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14,000명) 군사를 지원한 ‘형제의 나라’, 얼마 전까지 터키라고 불렀던 바로 그 튀르키예 맞습니다.

그런데 ‘형제의 나라’라는 말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습니다. 튀르키예는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스탄’으로 끝나는 모든 투르크족 나라를 포함해 조금만 친하면 ‘형제의 나라’라고 부릅니다. 일종의 외교적, 수사적 표현을 우리는 진짜 각별한 사이로 이해하고 일방적인 ‘내적 친밀감’을 쌓아왔던 것입니다. 심지어 용인 에버랜드 근처에 튀르키예(당시 터키) 참전 기념탑이 있고 서울 여의도에는 튀르키예의 수도 이름을 딴 ‘앙카라공원’이 있을 정도입니다.
이 밖에도 튀르키예는 재미있는 얘기가 많은데 전 국토의 98%가 아시아에 속해 있으면서 단 2%가 유럽 끝에 붙어 있다는 이유로 자기네는 유럽 국가라고 우긴다든지 동로마제국을 정복하고 오스만제국을 건설한 메흐메트2세가 당시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이름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거기 있는 큰 도시’라고 불렀습니다. ‘거기 있는 큰 도시’가 바로 그리스말로 ‘이스탄불’입니다. 이게 굳어져 오늘날의 이스탄불이 된 것입니다.

다시 축구 얘기로 돌아와서, 튀르키예도 축구 열기가 만만치 않은 나라입니다. 영국의 EPL, 독일의 분데스리가, 스페인 라리가, 이태리 세리에 못지않게 튀르키예도 1959년부터 수페르리그라는 프로축구리그를 운영할 정도로 축구에 열정적입니다. 최근 후배가 이스탄불을 여행하면서 미래의 수페르리거를 꿈꾸며 유니폼을 입은 아이들을 찍은 사진을 보내왔기에 쓴 얘기입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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