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대학에 가고 싶어 하는 고3 조카가 대학입시에 필요한 수행평가를 겸한 자기소개서를 썼는데 좀 봐 달라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지원 가능한 대학을 골라서 각 학교가 요구하는 양식에 따라 10개 항목을 항목당 300자~500자 정도로 작성하는데 모두 네 개 학교니까 분량이 만만치 않습니다.
학습이나 학교생활을 통해서 얻은 사실을 바탕으로 요약해서 서술하고 이를 통해 배운 의미 있는 점들을 설명하는 일종의 다큐멘터리식 구성입니다. 사소하게 주술관계가 맞지 않고 어법이 약간 이상한 부분이 있지만 고등학생이 쓴 것 치고는 매우 깔끔하게 정리가 잘 돼 있었습니다.
전체적으로 다 읽고 든 생각은 누가 전문적으로 손을 한번 본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직접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단정할 순 없지만 그 ‘누구’는 아마도 생성형 인공지능일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자신만의 학습활동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초안은 본인이 썼을 테고 그 초안을 근거로 챗GPT든 제미나이든 인공지능에 마무리를 맡겼겠지요.
인간이 쓴 초안과 AI가 다시 쓴 것을 비교하면 의미상으로 달라지는 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AI가 쓴 글에는 글쓴이의 개인적 특성을 드러내는 지표인 ‘복잡성의 변동성’이 대폭 줄어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람마다 말투가 다르듯, 글도 개인의 특성이 드러나고 같은 의미라도 자주 사용하는 단어, 즐겨 쓰는 표현 등이 각기 다른데 AI는 한결같이 ‘모범답안’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외향적인 사람들은 나, 너, 우리 같은 대명사를 자주 쓰고, 의리나 친밀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친구와 관련된 단어를 많이 사용하며, 나이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를 뜻하는 단어를 쓰는 빈도와 방식이 달라지는 식입니다.
그런데 AI가 글을 고치면 이런 특징적인 단어 사용이 사라지면서 평범하고 표준적인 글, 소위 건조하고 재미없는 글로 바뀌기 쉽습니다. AI의 또 다른 특성은 부정적인 감정단어나 도덕적 순수성과 연관된 종교적 단어, 성별에 따른 사회적 관계단어의 사용 패턴은 가급적 건드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 AI는 통계적으로 가장 확률이 높은 텍스트를 생성하도록 최적화돼 있기 때문에 언어적 다양성을 무시하고 지배적 언어 패턴을 강화하는 특징도 있습니다. 그러면 언어의 동질화 현상은 주류 집단의 얘기는 증폭시키는 반면 소외된 계층의 언어적 특성을 소외시킬 위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조카가 쓴 글은 본인이 작성한 컨텐츠를 인공지능에 포장을 맡김으로써 논리적 정합성과 문항이 요구하는 정답에 가까운 보편적인 ‘답안’은 얻었지만, 자기만의 언어, 향기, 분위기를 양보해버림으로써 ‘나만의 색깔’은 좀 밋밋한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