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기(9월 26일)에 개도국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인 ‘달리는 인구 증가’가 1인당 GDP 3만5천 달러를 바라보는 현 시점에 재현되는 건 특이한 현상이라고 썼습니다. 아무래도 경제 발전단계와 맞물려 보기 드문 케이스라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 이유를 ‘러닝크루’에서 찾습니다. 달리기는 원래 혼자 하는 운동인데 다양한 형태로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달리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재미거리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 달리기 동호회야 예전부터 있었지만 ‘러닝크루’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태의 모임은 뭐가 다를까요?
기존 동호회는 말그대로 달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달렸습니다. 정기적으로 모여 달리고 형편에 맞춰 마라톤대회에 출전하거나 모임 후에 식사를 같이하는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크루’는 동호회와 뜻은 차이가 없지만 동호회가 안 하던 걸 합니다. 이른바 ‘러닝 스쿨’과 ‘러닝 아카데미’, 전문 강사를 초빙하고 운동화나 유니폼도 뽐내듯 비싼 고급품으로 휘감습니다. 모임에 훨씬 적극적이고 인원도 대규모이며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은 필수입니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러닝크루들이 활동하다 보니 부작용도 나타납니다. 광화문과 이태원 한강공원 등 도심을 무리 지어 달리며 민폐 캐릭터로 낙인 찍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십여 명씩 떼로 달리면서 보도를 점령하거나 학교 운동장에 큰 소리로 고함치고 음악을 크게 틀기도 합니다.
여의도 한강공원을 뛰는 러닝크루들은 떼거지로 다니면서 우악스럽게 ‘지나갑니다’ ‘비켜주세요’라고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어떤 러닝크루는 서울 세운상가 앞 20m의 짧은 도로를 질주하는데 1대1 대결 게임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또다른 러닝크루는 지하철 역사 안에서 수십 명이 뛰어 논란을 빚었습니다. 때론 맥주파티로 이어지는 이벤트를 열어 ‘사교모임’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그러니 과도한 장비와 유행하는 값비싼 브랜드로 칠갑을 한 사람들이 생겨나고 운동보다는 다른 목적으로 ‘크루’ 활동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달리기로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의 좋은 점으로 ‘혼자 있는 시간’을 꼽았습니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달리는 동안은 누구하고 얘기하지 않아도 되고 누구의 얘기도 듣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위 풍경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을 응시하면 된다. 그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다”라고 썼습니다. 그러면서 “하루 한 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건 정신건강에 중요한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했습니다.
달리기의 진정한 즐거움은 혼자 달리는 것에 있습니다. 함께 뛰는 맛도 있겠지만 달리기의 정수를 느끼고 깨닫기에는 부족합니다. ‘러닝’과 ‘크루’는 애초에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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