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와 대학원에서 같이 공부하는 학생 중에 태국에서 유학 온 친구가 있습니다. 같은 미술사 전공인데 딸아이는 석사, 유학생은 박사과정이라는 점이 다르지만 겹치는 수업이 많아 친해졌다고 합니다. 같이 밥 먹고, 전시 보러 다니고, 스터디도 하면서 생일도 챙겨주는 사이가 됐습니다.
하루는 학교에서 돌아온 딸아이가 “그 언니 천재인 것 같아”라며 호들갑을 떱니다. “현실 공간과 비현실 공간의 사이, 꿈과 현실의 중간, 이승도 아니고 저승도 아닌 곳을 지칭하는 마땅한 한국어가 없다며 자기는 그것을 통칭해 ‘그승’이라고 정의했다”고 하는 겁니다.
대명사 또는 관형사로 쓰이는 지시어 ‘이/저/그’에서 힌트를 얻었을 것으로 짐작되는데 우리말에 대한 이해와 응용력, 그리고 상상력이 놀랍습니다. 지시어는 화자의 시점과 상황을 바탕으로 대명사나 한정어로 사용합니다. 예컨대 ‘이’는 말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사물 등을 가리킬 때 씁니다. ‘저’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멀리 있는 것, 그리고 ‘그’는 듣는 사람과 가까이 있는 사람이나 사물 등을 칭할 때 사용합니다.
‘이’와 ‘저’는 쓰임이 비교적 명확한데 ‘그’는 좀 다릅니다. 화자와 청자의 거리에 따라 쓰이기도 하지만 화자와 청자 모두 알고 있는 것, 또는 명확한 윤곽을 갖고 있지 않은 것, 그렇지만 여기엔 존재하지 않는 것 등을 막연히 가리킬 때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가까운 책상 위에 있는 가위를 달라고 할 때 “그 가위 좀 줄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상 위에 있는 가위 좀 줄래?”라고 하는 것보다 짧고 효율적입니다. 먼저 말한 대상을 가리킬 때도 ‘그’는 유용합니다. ‘며칠 전에 사고 싶은 자동차 견적서를 받았거든. 그냥 그 차 사려고’하는 식입니다.
‘그’는 또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 알고 있는 대상을 가리킬 때도 씁니다. “좀 전에 안경 낀 그 사람이 우리 팀장이야”라는 문장에서 ‘그’는 ‘사람’을 더 선명하게 합니다. ‘그’가 가리키는 대상이 분명합니다.
가리키는 대상이 확실하지 않은 ‘그’도 있습니다. 가령 ‘경제력을 뛰어넘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라고 할 때 ‘그’는 대상이 확실치 않습니다. 박완서의 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도 ‘그’가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이처럼 막연한 ‘그’는 말보다 글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문학적 막연함은 상상력을 자극하지만 실용적, 구체적이어야 하는 글에서는 ‘그’가 거추장스러울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딸아이 친구는 ‘그’를 이용해 한국인도 발명하지 못한 ‘그승’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학생이 앞으로 펼쳐갈 미래가 ‘그’ 어떤 것보다 밝고 환하기를 기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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