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는 달리 딸은 방송 같은 데서 아기가 나오면 너무 예뻐 하고 길을 가다가도 어린아이를 보면 귀여운 장면을 포착해 카메라에 담습니다. 또 강아지(대신 요즘은 ‘반려동물’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도 무척 좋아합니다. 그래서 빨리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싶다고 자주 말합니다. 독립해서 가정을 꾸리면 반려동물을 키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몰인정하다고 욕하겠지만 나는 세상 싫은 게 아이들, ‘반려동물’입니다. 싫어하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정상적인 대화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와 동물도 나름의 소통을 하긴 합니다. 그러려면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희생과 감정노동이 필수적인데 나는 그렇게까지 쏟을 에너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와 동물만 그런 게 아닙니다. 성인 중에도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불가능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최근 사례입니다. 회견은 “모든 것은 저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이며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는 말씀, 진심 어린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로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구체적으로 무엇을 사과하는지 얘기해 달라”는 질문에 “잘못한 게 있으면 딱 집어주시면 그 팩트에 대해 사과 드리겠다”는 답변으로 끝냈습니다. 내가 보기엔 “이유는 모르지만 사과하라니까 할게, 됐지?” 이런 말을 들은 기분이었습니다.
사과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인정해서 용서를 비는 행위입니다. 사과하는 것도 원칙과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잘못했는지 언급해야 합니다. 그리고 피해를 끼친 상대에 대한 공감과 보상, 향후 개선방향 등을 제시하며 용서를 구하는 게 기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전제돼야 할 조건은 사과의 전 과정에서 ‘진심’이어야 한다는 겁니다. 누가 시키거나 등 떠밀려 하는 사과는 사과가 아닙니다.
잘못이나 대상을 두루뭉술 애매하게 언급하거나 ‘마음이 상했다면’ 같은 조건을 붙인 사과는 금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 같은 조언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사과는 ‘리더의 언어’입니다. 자신의 잘못이나 책임을 감추거나 축소하지 않고 투명하게 드러냄으로써 진정한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21세기엔 제대로 사과하지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면서 하는 사과만큼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개인 간에도 이럴진대 하물며 조직의 리더, 특히 한 나라를 이끄는 사람이라면 말할 것도 없습니다. 나는 정치적 식견이 없는 사람이라 다른 건 잘 모릅니다. 그 방대한 정치세계의 이해관계와 전략적인 수사(修辭)들은 차치하고 ‘사과’라는 부분만 떼어놓고 얘기한 것입니다. ‘사과, 죄송, 잘못, 불찰’ 등의 단어를 10여차례 반복했다는데 사과는 고개를 숙이고 단어를 나열한다고 받아들여지는 게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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