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같이 다니는 젊은 친구 부부가 얼마 전 아들을 낳았습니다. 작년에 임신 소식을 전하면서 해 준 얘기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임신 10주 정도 됐을 때 병원에서 태아의 성별을 알려주면서 “괜찮아요, 요즘은 아들도 나쁘지 않아요”라고 했다는 겁니다.
오랫동안 남아선호 시대를 살아온 나를 포함한 어른들은 이 얘기를 듣고 모두 박장대소했습니다. 동시에 세상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이젠 많은 예비 부모들이 아들보다 딸을 더 원하는 게 기본인 세상이 됐다는 것을.
그러고 보니 우리를 포함해 선진국들은 아들보다 딸을 더 좋아하는 경향이 뚜렷합니다. 그런데 전통적인 남아선호 국가인 중국 인도 같은 개도국들도 점점 아들을 덜 원한다고 합니다. 영국 시사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호에서 ‘전 세계적으로 여아를 더 축복으로 여기는 부모가 늘어나는 현상이 인류역사상 처음 등장했다’고 밝혔습니다.
유엔 자료 분석에 따르면 연간 여자 태아 사망자 수는 2000년에 170만 명으로 가장 많았고 2015년에도 100만 명을 넘었는데 올해는 20만 명대로 급감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여자 태아 사망률이 급증한 것은 초음파검사가 보편화된 1980년대부터입니다. 그러다 남아선호가 줄어든 현재는 태아 성비가 자연비율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보통 자연비율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5명 정도입니다.
현재 태아 성비가 자연비율에 근접한 대표적인 나라가 바로 한국입니다. 우리도 1990년대에는 여아 100명당 남아 116명이었습니다. 아들 없는 부부의 출산시도가 계속되면서 셋째의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200명, 넷째의 경우는 여아 100명당 남아 250명이나 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여아 100명당 남아 105.1명으로 거의 자연비율 상태입니다.
인구 대국인 인도와 중국에서도 심각한 성비불균형을 초래한 남아선호가 2020년대 들어 줄어들고 있습니다. 중국은 2000년대 내내 117명 선을 유지하다가 2023년에는 111명으로 감소했고 인도는 2010년 109명, 2023년엔 107명까지 줄었습니다.
방글라데시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의 출산하지 않은 여성의 자녀 성별 선호도를 보면 딸이나 아들이나 비슷합니다. 카리브해 연안과 일부 아프리카 국가의 태아 성비는 여아 100명당 남아 101명을 밑도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아선호의 퇴조는 자녀 성별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 변화가 가장 크지만 성비 불균형으로 나타난 미혼 남성 증가, 남학생의 학업성취도 저하 등 다른 원인들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의견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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