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블로그이웃 한 분이 자존심과 자존감에 대해 궁금해하셨습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흥미롭겠다 싶어 생각을 정리해 봤습니다. 우선 이런 질문을 한번 가정해 봅니다. “내가 먼저 연락하고 사과했더라면 우리 사이가 달라졌을까?”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후회나 미련 아닌가요?
친한 관계에서 다툰 뒤에 먼저 손을 내밀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자존심. 자존심은 나를 지키는 방패 같지만 때로는 관계를 깨뜨리는 흉기가 되기도 합니다. 자존심(pride, ego)이 ‘체면을 지키고 남에게 지기 싫어 하는 마음’이라면 자존감(self-esteem)은 ‘자신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가치 있게 여기는 마음’쯤 될 것입니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서로 다른 길로 이끕니다.
심리학에선 자존심이 자기방어, 우월감, 인정욕구 등과 관련이 있다면 자존감은 자기수용, 자기신뢰, 자기가치 같은 개념과 연결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자존심이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비교 같은 것에 민감하다면 자존감은 내면적 자기평가, 자기성장, 애착관계에 예민합니다.
사회문화적 맥락에서도 다르게 작용합니다. 자존심은 유교사회의 체면, 명예, 지위를 중시하는 가치와 연결됩니다. 그러다 보니 기성세대의 가치관 저변에 흐르는 주된 정서로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자존감은 현대사회의 개인주의, 심리적 웰빙 같은 가치와 연결되면서 자신을 위한 삶과 자기돌봄 같은 MZ세대의 정서에 더 부합합니다.
감정반응과 행동특성도 다릅니다. 자존심은 감정적으로 상처받고 질투, 분노, 경쟁심으로 나타나는 데 비해 자존감은 수용, 용서, 자기회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갈등 상황에서 자존심은 방어적이고 자신이 어떻게 보여질까를 생각하는데 자존감은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성찰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또 관계에 있어서 자존심은 인정받으려는 욕구와 우위에 서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조화를 지향합니다. 실패했을 때도 다르게 반응하는데 자존심은 자책하거나 타인을 탓하며 회피하거나 공격적 성향을 띠는데 비해 자존감은 잘못을 인정하고 개선과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속성을 보입니다.
심리학적, 사회적, 행동특성 등으로 나눠 자존심과 자존감을 비교해 봤는데 설명이 충분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친구 연인과 싸우고 사과를 미루는 이유도, 직장에서 자기 성과에 대한 피드백을 마치 공격받는 것처럼 느끼는 것도 자신이 하찮아 보일까 봐 두려운 마음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당당하지만 속은 불안하고 자존심이 셀수록 자존감은 오히려 낮은 경우가 많습니다. 흔히 자존심은 지켰지만 자존감은 잃었다고 말하는 이유가 그것 때문입니다.
한 심리학자는 “자존심은 상대에게 ‘보이고 싶은 나’이고 자존감은 내가 인정하고 싶은 ‘진짜 나’이다” 라고 했는데 일견 납득이 되는 말입니다. ‘자존심 때문에 이길 수는 있지만 자존감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말도 떠오릅니다. 갈등 상황에서, 지켜야 할 자존심을 위해 선택하는지 돌봐야 할 자존감을 위해 선택하는지 스스로 질문해 보면 좀 더 현명하게 처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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