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욘드포스트 김민혁 기자] 배임죄는 기업 경영진에게 있어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부담스러운 형사 리스크 중 하나다. 문제는 단순히 처벌 수위나 적용 빈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임죄가 가진 법적 구조 자체가 불명확하다는 데 있다. ‘임무에 위배되는 행위로 본인에게 손해를 가했을 때’ 성립된다는 이 죄는, 경영인의 선의의 판단까지도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게 만든다. 이런 특성 때문에 최근에는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에서도 배임죄에 대한 법제도 개편 필요성이 적극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배임죄의 가장 큰 문제는 ‘임무 위배’와 ‘재산상 손해’라는 개념이 지나치게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이는 기업 경영이라는 특수한 영역에서는 사후적으로 얼마든지 ‘손해’가 있었던 것처럼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예컨대, 이사회에서 전략적 판단으로 추진한 M&A가 외부 변수로 실패했을 경우, 결과론적으로 회사에 손해가 발생했다면 배임으로 기소될 수 있다. 이때 실제 의사결정 당시의 합리성과 고의 유무는 뒷전이 되기 쉽다.
그런데 배임죄는 높은 기소율만큼 무죄율도 매우 높다. 최근 통계에 따르면 업무상 배임죄의 연간 신고 건수는 2,000건 이상에 달하지만, 무죄율은 일반 형사사건의 두 배에 가까운 5.8% 수준이다. 이는 법리 적용이 일관되지 않고, 피의자의 고의 여부나 실질적 손해 발생에 대한 판단 기준이 불명확하다는 방증이다. 애초에 법조문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재판부의 주관적 판단에 따라 유무죄가 갈릴 위험성이 크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기업 경영자가 배임 혐의에 연루되었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실무적으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실관계’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다. 고소장 원문을 확보해 어떤 행위가 문제되고 있으며 어떤 법리로 기소가 시도되고 있는지를 명확히 분석해야 한다. 이후 경영판단의 합리성, 고의성 부존재, 손해 발생 여부 등 각 쟁점에 대한 논리적 방어전략을 세우는 것이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은 객관적 증거다. 예를 들어, 당시의 경영환경 변화에 대한 외부 자문 기록, 이사회 의사록, 전문가 보고서, e-mail 기록 등을 통해 의사결정이 사적인 목적이 아닌 합리적 경영판단에 근거했다는 점을 구조적으로 증명해야 한다. 또 배임의 구성요건 중 하나인 ‘고의성’이 없었음을 입증하기 위해 의사결정 당시의 사전 검토 과정, 대안 비교 자료 등을 면밀히 정리하는 것이 유리하다.
필요하다면 피해자와의 합의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한다. 고의성이 낮거나 손해가 확정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실무적으로는 합의를 통해 고소가 취하되거나 처벌이 감경될 여지가 크다.
법무법인 YK 강남주사무소 이준혁 변호사는 “배임 혐의 사건은 수사 초기 대응이 관건이다. 초반 대응 방향에 따라 사건의 성격 자체가 바뀔 수 있어, 고의성 및 손해 발생 여부에 대한 객관적인 증거와 그에 맞는 변론전략을 체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