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보기 힘든 것 같은데 예전에는 여름만 되면 TV에서 ‘납량특집’이리는 이름으로 공포영화나 드라마를 방영하곤 했었습니다. 발음도 어려워서 ‘남냥’이라고 하는 ‘납량’은 ‘여름철에 더위를 피해 서늘한 기운을 느낀다’는 뜻입니다. 무더위와 무서운 얘기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땐 그랬습니다.
며칠 전 읽은 책에 무서운 얘기가 나왔습니다. 주인공 남자가 밤에 혼자 조용히 있다가 옆에 있는 전신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남자는 거울을 보고 가위바위보를 했습니다. 그런데 남자가 졌습니다. 소름 돋는 얘기 아닌가요. 이걸 읽은 후 나는 가끔 밤에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고 가위바위보를 해 봅니다. 묘하게 스릴 있습니다.
거울 보고 가위바위보 하는 게 왜 이렇게 무서운 걸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거울 속의 나는 반드시 나와 똑같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울 속의 나는 절대 내 모습이 아닙니다. 일단 거울 속의 나는 3차원의 내가 2차원으로 차원이 축소된 결과입니다. 입체를 평면으로 압축하면 어떻게든 왜곡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눈도 마찬가지입니다. 3차원 세계가 눈의 망막이라는 2차원 화면에 반영되기 때문에 온갖 착시현상이 일어납니다. 거울 속의 나를 진짜 나라고 생각하는 건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는 나르시스만큼이나 황당한 일입니다.
거울이 갖는 또 하나의 문제는 좌우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한때 정설처럼 떠돌던 뇌의 좌우 분리설에 따르면 정서를 좌우하는 오른쪽 뇌는 왼쪽 얼굴의 표정에 더 깊이 관여합니다. 왼쪽 얼굴의 정서 표현이 더 풍부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옛날 초상화들은 왼쪽 얼굴을 훨씬 많이 그렸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셀카 얼짱 각도도 대부분 자신의 왼쪽 얼굴을 향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맞은편 사람은 오른쪽 얼굴부터 봅니다. 상대의 얼굴을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스캔하기 때문입니다. 시선이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이유에 대해선 가설이 분분하지만 오른손잡이가 많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책이 오른쪽 방향으로 쓰여 있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튼 내가 아는 나와 남이 아는 나의 모순관계는 아주 기본적인 얼굴 표정을 읽는 단계부터 엇갈립니다. 그래서 타인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에 옳고 그름을 따지며 단죄부터 하려고 들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해석의 여지를 남겨 둬야 관계를 유지하고 사회도 살 만해집니다. 결론은 나는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면 거울 보고 가위바위보 하는 것도 더는 안 무서워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