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드물지 않게 겪는 것 중 하나가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겪는 갈등입니다. 이와 비슷한 게 또 있습니다.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앞의 것은 간혹 일치하기도 해서 좋아하는데 잘하기까지 하는 경우를 간혹 봅니다. 이 경우엔 그냥 좋아하는 일을 하면 되니까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해야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해야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은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내가 내린 결론은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나중에 하는 것입니다. 해야 하는 일은 매일 루틴처럼 하고, 하고 싶은 일은 가끔 취미처럼 하는 것이 그나마 낫다는 게 살면서 얻은 깨달음입니다.
'피겨 여왕' 김연아 선수의 다큐멘터리를 본 적 있습니다. 사람들은 은반 위를 나비처럼 미끄러지면서 돌고 뛰고 3회전을 점프하는 모습에 환호하지만 그렇게 하기까지 김연아는 매일 새벽 전날 연습으로 물 먹은 솜처럼 무거운 몸을 일으켜 연습장에 가야 했고 한 번 성공할 때까지 수백 번을 넘어지고 깨지고 엉덩방아를 찧어야 했습니다. 매일 새벽 선잠을 깨고 연습장으로 향하는 일은 해야 하는 일이고 스케이팅은 하고 싶은 일입니다.
다른 얘기도 있습니다. 한 화가는 하고 많은 것 중에서 유독 새만 그렸습니다. 결국 새 그림에 관한 한 대가가 됐습니다. 인터뷰하는 기자가 물었습니다, 한 가지만 그리면 지겹지 않냐고. 그는 ‘소재는 하나라도 깊이가 달라 전부 담아낼 수 없어서 늘 새롭다’고 답했습니다. 뒤에 들으니 그의 진심은 달랐습니다. “처음엔 좋았지. 새를 좋아하니까. 그쯤 하고 이젠 다른 것도 하고 싶은데 세상은 나한테 새만 원한다.”는 한숨과 함께 솔직히 지겹다고 고백했습니다. 인간적인 솔직한 대답에 하고 싶은 것도 가끔 해야 행복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로커를 꿈꿨지만 밤무대 밴드가 된 주인공에게 “넌 행복하냐?” 우리 중에 자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사는 놈은 너밖에 없잖아.” 라고 묻는 친구의 대사가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나옵니다. 뼈아픈 질문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미국 뉴저지의 소도시에서 시내버스를 몰면서 매일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아내와 저녁 먹고 동네 바에서 맥주를 마시는 틈틈이 시를 쓰는, 식물처럼 고요한 삶을 사는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도 있습니다.
꿈에 다가가는 것도, 꿈에서 멀어지는 것도 모두 지난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 어디쯤에서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도쿄 시부야의 공공시설 청소 일을 하면서 필름 카메라로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을 찍고 단골 식당에서 술 한잔 마시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처럼. 그러고 보니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좌우명 ‘매일매일은 성실하게, 인생은 대충대충’이라는 말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