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어 가챠(ガチャ)는 원래 작은 기계에서 나는 금속성 마찰음이나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를 표현하는 의성어입니다. 우리말로는 ‘찰칵’ ‘철컥’ 정도에 해당합니다. 이 의성어를 처음 활용한 곳은 캡슐토이 업계입니다.
캡슐토이는 기계에 동전을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조그만 장난감이 들어 있는 캡슐이 랜덤으로 나오는 판매방식인데 우리말 ‘뽑기’라고 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캡슐토이 산업의 대표 주자 반다이는 동전을 넣고 레버를 ‘찰칵(가챠)’ 하고 돌리면 캡슐이 ‘퐁(ポン)’하고 나오는 이미지에서 착안해 ‘가샤폰(ガシャポン)’으로 이름을 지었습니다. 타카라토미도 상품명으로 ‘가챠’를 등록해 사용하고 있는데 이용자들은 회사를 구분하지 않고 그냥 ‘가챠’라고 부릅니다.
대로변이나 상점가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아예 가챠기계만 들여 놓은 ‘가챠방’들이 상가, 공공시설에 입점할 정도로 장난감의 종류도 많고 다양합니다. 다만 한번 출시된 시리즈는 시즌이 끝나면 단종되는 경우가 많아 시기를 놓친 매니아들이 그 물건을 뽑은 사람에게 웃돈을 주고 되사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집니다. 가격은 보통 한번에 200~500 엔으로, 고가는 1~2천 엔짜리도 있어 한국에 비해 비쌉니다. 키홀더, 핸드폰, 액세서리, 소형 장난감, 봉제인형 등 종류가 다양하고 가격에 비해 퀄리티도 괜찮은 편입니다.
한국은 1980년대 초 게임기 형태로 문방구에 도입된 것이 시초입니다. 당시 화약을 넣어 터뜨리는 조그만 수류탄, 딱딱이, 반지, 목걸이, 나침반, 폭죽, 방구탄, 고무재질, 끈끈이 등이 인기 있었는데 100 원짜리 치고는 괜찮지만 품질이 대체로 조악하고 어린이들에게 위험한 물건도 있었습니다. 2000년대 들어 피규어, 손목시계 전자계산기, 테트리스 게임기 등으로 품목이 다양해졌는데 금액도 1천~3천 원이 넘는 고가 기계도 등장했으며 현금 대신 카드결제만 가능한 곳도 있습니다.
이후 ‘가챠’는 캡슐에서 어떤 장난감이 나올지 모르는 뽑기방식을 가리키게 됐고 모바일 게임이 대중화하면서 확률에 따라 캐릭터나 아이템을 얻는 시스템을 뜻하는 게임용어로 널리 쓰이게 됐습니다. 영어권에서도 ‘Gacha’라는 철자를 그대로 사용하면서 주로 게임 속 무작위 뽑기 시스템을 뜻합니다. 최근에는 의미가 더욱 확장돼 결과를 미리 알 수 없고 운에 좌우되는 상황을 비유할 때도 ‘가챠’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정리하면 ‘가챠’라는 말은 ‘기계음 의성어 -> 캡슐 뽑기 -> 게임용어 -> 일상적 비유’ 이 네 단계로 진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단어 하나에 담겨 있는 역사와 서사를 알고 있으면 문맥에 따라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이해하기가 한결 쉬워집니다. ^^*
[비욘드포스트 이순곤 기자] sglee640@beyondpos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