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에 이룩한 공이나 업적보다 실패로 기억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영원한 재야’로 불리던 며칠 전 세상을 떠난 장기표 선생도 그런 사람 중 하나입니다. 학생, 노동, 민주화 등 시민운동을 하면서 10년 가까운 시절을 철창 안에서 보냈고 그보다 긴 세월을 수배자로 지냈습니다. 수 차례 도전했지만 국회의원 선거에서 번번이 떨어졌고 생의 막바지엔 특권폐지운동을 벌였으나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생애 마지막까지 ‘성공’이나 ‘업적’이라고 부를 만한 건 없습니다.
그는 노동이 존중 받고 사회적 약자가 인격적으로 대접받는 세상,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런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들과 모여 정당운동을 했고 사회운동을 펼쳤지만 끝내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실패한 인생’을 안타까워하는 이유는 그의 주장이 옳기 때문입니다. 그는 옳지 않은 것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실현하겠다고 행동으로 나섰습니다. 정의라고 믿는 꿈과 희망을 한번도 포기한 적이 없습니다.
처음 민주화운동할 때 가졌던 신념체계와 목표는 사회주의 혁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고 그 신념체계에 중대한 오류가 있음을 알았을 때 장기표는 과오를 반성하고 새로운 사회변혁을 위해 노력했습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바꿀 건 바꾸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길을 모색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한 많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의 이력을 훈장처럼 주렁주렁 달고 공직에 나가고 정치를 하고 사회지도층으로 올라설 때도 그는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켰습니다. 독재에 대한 반대나 정의롭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와 저항은 했지만 사람을 특별히 미워하진 않았습니다.
유럽 한 도시에서 트램 쪽창에 비친 노인의 얼굴을 보면서 장기표 선생을 떠올렸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인생도 없습니다. 그의 사상과 행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심지어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현실화 할 정치적 동력을 만들진 못했지만 나아가야 할 방향과 목표를 제시한 구체적인 성과는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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